간신은 군주에게 아첨과 무고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 간신은 말재주가 번듯해서 윗사람이 혹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군주가 신하의 간사한 말에 혹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군주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내서 말을 혹하도록 잘 꾸며서 말하기 때문이다.
<순자(荀子)>에서 공자는 다섯 가지 간신을 설명하고 있다. 1.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 2.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 3.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 4.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 5.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 공자에 따르면 이들은 말을 잘하고 지식이 많고 총명하지만, 속임수를 잘 쓰고 진실이 없다. 군주가 이들에게 놀아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삼국지로 유명한 유비의 촉나라는 제갈공명과 같은 뛰어난 인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황호와 같은 간신이 있어서 멸망하게 되었다. 유비가 죽은 다음 아들 유선이 황제에 올랐는데 황호가 황제에게 아부를 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상서령 겸 진군장군(현대의 부총리 겸 군사령관) 진지와 결탁하면서 승진을 거듭하여 중상시(현대의 대통령 비서실장)가 되었다. 황호는 AD 258년에는 정사를 완전히 장악하였고, 황호의 위세와 권력에 눌려 대신은 모두 뜻을 굽히고 따랐으며, 자신을 미워하는 황제의 이복동생을 좌천시켜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대장군(총사령관) 강유를 몰아내려다 실패했지만 강유가 후환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물러나 성도(成都, 촉나라의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다. AD 263년 위나라 군대가 촉나라를 침략하자 제갈공명의 손자인 촉나라 장군 제갈상은 면죽관으로 나아가 위나라 군대를 막았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자 일찍이 황호를 참수하지 못해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탄식하며 죽었다.
명나라 환관 위충현은 윗사람의 눈치를 잘 살폈기에 황제 희종의 문서수발실장으로 승진했다.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황제가 향락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충신들을 모함하여 제거하기 시작했다. 조카가 지휘첨사(경호실장)가 되어 금의위(경호실)를 장악하였고 자신은 감찰과 정보기능을 수행하는 동창(비밀정보기구)의 책임자가 되었다. 수사와 모진 고문으로 공포정치가 일상화되었다. 대신들이 목숨을 걸고 위충현의 국정농단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황제는 이를 무시했다. 위충현은 관리들뿐만 아니라 황족들도 대거 살해했다. 하지만 희종이 죽고 새로운 황제가 점차 세를 쌓아 위충현과 그 일파를 제거했지만 늦었다. 이미 명나라는 커다랗게 흔들려 10여년 후 청나라에 망했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顔淵篇)’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 즉 백성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자에게 직언하는 신하 일곱명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제후에게 직언하는 신하가 다섯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는다.” 직언을 하는 신하를 두면 천자나 군주가 둔해도 나라가 신하들의 실력에 의해 유지되지만, 오직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신하만 곁에 두면 군주가 편할지는 몰라도 나라가 흔들리고 내부반란이나 외부침략으로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즉, 군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주가 신하를 잘 쓰는 것이다.
공자는 주역을 풀이한 <계사전(繫辭傳)>에서 “덕이 두텁지 못하면서 지위가 높거나, 사리를 모르면서 도모하는 바가 크거나, 역량은 작으면서 맡은 바가 무거우면, 화를 당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고 썼다. 신하들이 그릇이 작아 맡은 바를 감당하지 못하면 화를 당하며, 그 피해가 결국 군주와 백성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정덕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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