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상상하기(17) - 마을과 어울리는 아이들
작은 학교 상상하기(17) - 마을과 어울리는 아이들
  • 윤일호 장승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2.11.3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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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장승초를 살리고자 했을 때 학교 둘레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가장 큰 까닭은 면소재지에 거점학교가 있는데 굳이 거점학교도 아닌 전교생이 열셋밖에 안 되는 학교를 살릴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마을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 어르신들이 졸업한 학교지만 자녀들은 전부 도시로 나가고 손자도 다니지 않는 학교니 구태여 살리는 것에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 법도 하다. 또 지역 어르신들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보다 전주에서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학교에 별 관심이 없으셨다. 학생들로 북적였던 학교, 들썩들썩했던 예전 운동회는 한때 추억일 뿐이었다.

 때마침 이사 온 몇 집 학부모들도 딱히 진안과 연고가 없다 보니 마을 어르신들과 어울려 지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봉사활동을 학교 둘레로 가기 부담스러웠고, 읍에 있는 요양원으로 봉사를 다녀왔다. 이렇게 처음 몇 해는 마을과 학교가 한 살이 되지 않은 느낌이었고, 우리가 장승학교를 살린 것이 학교 둘레 정서와 맞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이사 오는 가정도 늘어났고, 학교 둘레 마을마다 젊은 학부모와 아이들도 늘어났다. 자연스럽게 학년별로 마을에 봉사활동을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 둘레 마을마다 학년을 정하고 어르신들에게 드릴 먹을거리, 간단한 공연도 준비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어색함도 있었지만 마을회관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금세 아이들도 표정이 풀리고 어르신들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르신들은 예전 학교 다니던 이야기며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마을회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준비한 쓰레기봉투에 마을 둘레 쓰레기 줍기도 한다. 이런 활동이 여러 해 쌓이면서 이젠 봉사활동은 자연스레 마을로 가는 게 익숙해졌다. 어르신들도 아, 장승초 아이들 왔구나, 하고 반갑게 맞아주신다.

 한때 혁신 교육의 화두로 ‘마을교육공동체’(일명 마공)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나는 그 말이 영 불편했다.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요즘 마을 형편이 어떤지 알고 있을까, 하는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이런 말을 마치 마을의 전문가인척하는 꼴도 내키지 않았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모두 시골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마을교육공동체 포럼이나 여러 회의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현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 우리가 우정마을 가면 좋겠다.”

 “오예, 우리가 서판마을이다.”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이나 가고 싶은 마을이 있는 것처럼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도 “장승초 아이들 봉사활동 온다는데 우리 손자가 우리 마을로 오나?”하고 말씀하신다.

 인구 소멸 시대에 접어든 요즘, 장승초뿐만 아니라 시골학교 둘레 마을에 얼마나 아이들 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지만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어울려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이 많아지면 좋겠구나, 하는 꿈을 꿔본다.

 

 윤일호 장승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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