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단체간 갈등으로 심화되는 ‘간호법’ 논쟁
의료단체간 갈등으로 심화되는 ‘간호법’ 논쟁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2.11.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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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국회가 법안 심사를 시작한 ‘간호법’을 둘러싼 찬반 단체 간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향후 5만여 명이 모인 ‘간호법 제정 총궐기대회’ 열고 지속적인 집회를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를 위한 수요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날 전국에서 모인 간호사와 간호대생 500여 명은 ‘국민의힘은 정책협약으로 약속한 간호법 제정 즉각 이행하라’,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간호법을 즉각 심사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간호사협회의 신경림 회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5월 26일, 10월 26일 그리고 23일까지 세 차례나 간호법 상정을 거부했다”라며 “국민의힘은 지난 21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사와 간호대생이 외친 ‘국민의 명령이다, 간호법 제정하라’는 외침을 듣지 못했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의사협회 및 간호조무사협회, 그리고 응급구조사와 요양보호사 단체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에서도 간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제정되면 총파업 등 강경 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예고하고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간호법은 간단히 설명하면 의료 및 의료인(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의 활동을 규정하는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조항을 따로 떼어 간호사만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간호단독법’이라고도 불린다. 법안을 추진한 민주당 등 정치권과 간호사협회의 주장에 따르면 방문 건강관리, 가정간호, 노인장기요양, 만성질환 관리 등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현장에서 간호사가 담당하는 일은 늘어나는데 이를 통합해 관리할 법안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용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 명확화,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처우 개선,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및 3년마다 실태조사,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간호사 인권침해 방지 조사, 교육의무 부과 등으로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 간호법에 대해 대다수 타 직역 보건의료인과 의료보조인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의료법’과 ‘보건의료 인력지원법’이라는 통합된 법률이 있음에도 ‘왜 간호사만 독립된 법을 제정하여 자신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가’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간호법 법안 수정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조항들은 현행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의 개정으로 충분히 현실화 가능하다”라며 “특정 직역만을 위한 법을 새로이 제정하는 것은 입법 과잉이며 행정력 낭비인 동시에 차별적 특혜로, 의료 현장의 다양한 보건의료 인력의 근로환경을 악화일로에 놓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법, 치과 의사법, 간호조무사법 등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그동안 의료법이라는 단일한 법률에 따라 의료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각 직역 간의 업무와 역할이 다르지만, 직역 간 이해관계의 상충보다는 협업과 통합을 통해 의료라는 하나의 결과로 귀결되는 것이 국민 건강권 확보라는 대명제에 더욱 부합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각 직역이 의료법으로부터 독립하여 각자의 권리와 직역의 역할 확대를 추구한다면 의료체계의 근간인 의료법은 유명무실해지고 질서는 무너지고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이에 따라 대한의사협회 등이 소속된 간호법 저지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오는 27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간호법 제정 저지를 위한 400만 보건복지의료연대 총궐기대회’도 개최한다. 의협 대의원회는 투쟁 방법으로 ‘의사 총파업’까지 거론하고 있다.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국회 앞 1인 릴레이 시위도 이어갔는데 지난 23일에는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엄동욱 정무이사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갖고 간호법 폐기를 요구했다. 엄 이사에 따르면 “간호법은 간호사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법이 절대 아니다”라며 “보건의료직역의 전문성과 업무영역을 전부 무시한 채 간호사가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만능법’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직역 간 갈등을 초래하고 각 직역의 전문성을 해치는 간호법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국민 건강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간호사가 의료기관의 피해자인 양 호도하며 떼쓰는 간호법을 즉각 폐기하고 지금이라도 모든 보건의료직역의 처우 개선과 업무 범위를 위한 대토론의 장으로 나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 모두 간호사의 근무 환경개선과 인력 확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간호법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수가의 현실화와 의료재정의 확대 등 보건의료인 모두가 노력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건의료 인력지원법’이 이미 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간호법은 앞선 좋은 취지보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독자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내용으로 보건의료인 간의 갈등만을 조장해 오히려 더욱 혼란만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을 정치권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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