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간다, 가을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가을이 간다, 가을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11.23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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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가을이 간다. 가을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가버린 가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가을엔 눈을 감아야 들리는 곡이 있다.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이별의 곡’이다. 듣기만 해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이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곡이다. 쇼팽이 자신의 곡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 곡이다. “이토록 감미로운 멜로디는 내 생애 처음이다”라고 한 곡이다. 잔잔하고 애수가 넘치는 아름다운 선율에서 내가 체험했던 그리움과 슬픔이 목을 메이게 하는 가을이 가고 있다.

 수리부엉이의 습격을 받아 숨을 거둔 따오기 새끼 울음소리가 소나무 가지를 뒤흔들며 가을바람을 타고 밀려왔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리기도 하는 가을이다. 그 텃새 부엉이가 사는 바위산에 돌을 던지고 싶었는데 가을이, 가을 단풍이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는 손사래를 젓는다. 고개만 돌려도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이별하는 풍경이다. 날마다 나보다 먼저 태양의 얼굴을 만져보는 벚나무가 그렇다. 몸에 품고 있던 잎이 찬란한 색으로 나무를 위로하더니만 가을비에 땅에 떨어진 잎과 이별을 하는 나무와 소리 없는 봄의 약속을 초록으로 교감하고 있다. 만남의 희망으로 가을은 가고 있다. 아무리 비통한 슬픔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몇 조각의 약속을 나눈다면 가을은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기쁨을 주며 떠난다. 이별이 아닌 만남을 약속한다.

  나의 모습이 가장 슬프고 작게 보여져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될 때, <레 미제라블>의 “코제트”를 떠올려 본다. 자기 몸보다 큰 빗자루로 청소하는 “코제트”를 불러서 위로해 줄 때와 나의 말을 경청해 줄 아이가 소설 속에서 찾았을 때의 ‘나’가 위대해 짐을 느낀다.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치는 “장 발장”보다 훌륭해 보인다.

  가을을 떠나보내기 위한 짧은 여행의 쾌감은 가을을 함께하고 만끽하고 가을을 미련 없이 보내겠다는 각오가 있어서 아름다웠다. 생각으로만 즐기던 여행으로 가을이 미련 없이 가고 있다.

  바다는 가을을 어디로 보내고 있을까. 가을바람이 모래 위의 내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흰 거품이 모래를 간지럽히는 순간 내 옷자락에 숨어있는 가을바람 한 줌이 파도를 타고 수평선 너머로 가고 있다.

  진작 가을을 붙잡지 않고 가을을 보내는 건 사람이다. 사람이 가을의 단풍과 바람 그리고 산과 바다의 색에 도취 되어 함성을 터트릴 때 가을은 간다. 이별의 가을은 멀리 사라진다.

  섬마을 모퉁이에 핀 키 작은 구절초 꽃잎에도 가을이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꽃잎 서너 개를 잡초 머리가 이고 있었다. 구절초에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모양일 터. 가을 내내 제 할 일을 다 한 구절초는 당당하게 가을바람에 흔들리면서 다음 가을을 기다릴 것이다.

 류시화의 시 ‘꽃에서 배운 것/한 가지는/아무리 작은 꽃이라도/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부문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사는 시인은 꽃처럼 산다. 허공에 날아다니는 언어들을 잠자리채로 잡아서 내 감정과 내통하는 언어를 원고지에 올려놓고 퍼즐 맞추듯 많은 시간과 열정만으로 산다. 위의 시가 내 마음의 헛헛한 부분에 와닿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조국 폴란드를 떠날 때 쇼팽의 첫사랑인 ‘콘스탄티아’에게 이별을 알리면서 연주한 <이별의 곡>은 가을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다. 조용하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숨소리 같았다. 멀리 있지만 내 곁에 항상 있어 줄 사람, 그래서 눈을 감으면 더 가까이에 있는 연인 같은 가을이 나를 기다려 줄 거다. 지평선 너머에 꿈이 있어 가을을 곱게 보내드린다. 좋은 음악도 끝이 있구나!

  가을은 간다. 가을은 어디론가 가고 있다. 멈추는 그곳에서 가을을 기다릴 때 산 자에게 보여주는 드라마처럼 꿈을 펼칠 준비를 할 것이다. 사람이 그리워 가을이 멀리서 주춤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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