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 시인 이매창, 그 문학의 산실 부안의 산과 바다
서정 시인 이매창, 그 문학의 산실 부안의 산과 바다
  •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2.11.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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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가을비 선뜻 개이자 바람이 일고/휘영청 밝은 달이 다락에 걸려//밤새 울어 예는 벌레소리에/내 간장 그대로 다 끊어진다// 한평생 동가식(東家食)은 배우기 싫어/ 달빛 젖힌 매화를 사랑하노라//그윽한 내 뜻은 저희들 모르고/오가며 나의 집을 찾아 들거니……. <가을> 이슬 젖은 하늘에 흩어진 별 반짝이고/기러기 가는 소리 구름 밖에 들려오고//매화 실가지에 걸린 달 난간에 들면/뜯던 비파 놓고 조름을 불러 본다. <잔월(殘月)> 부안의 예인(藝人), 명기(名妓) 이매창의 <가을>과 <잔월(殘月)>이라는 한시(漢詩)이다. 신석정 시인이 1958년에 ‘낭주매창시집간행회(浪州梅窓詩集刊行會)’를 통해 발간한 《대역 매창시집》에 수록된 시이다. 이매창의 시는 대부분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 가락 하더라’ 정도만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이매창보다는 개성의 명기 황진이나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을 그 시대 여류 예인 중의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역시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수 편이나 되지만, 이매창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아쉽게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KBS2에서 방영한 <천둥소리>가 바로 기생 이매창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기획특집 드라마인데, 영화<서편제>에서 ‘송화’역을 열연했던 국악인 오정해가 이매창 역을 맡았다.

이매창은 서화와 한시, 거문고 연주 등 문학과 예술방면에 뛰어난 소질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평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 김제 군수 이귀.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등 당대 내로라 하는 선비들이 이매창의 한시(漢詩)와 거문고 소리에 탄복하여 호의를 베풀고 곧바로 문우(文友)가 되었다. 그러나 서쪽바다 산자락 한 끝에 자리한 지역적인 특성 때문인지 여류문인들 중에서도 그다지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사실 남겨진 작품도 황진이는 한시 7수와 시조 6수이지만, 이매창은 58수나 개암사에서 목판으로 제작하여 전해 내려왔다. 현재 그 목판은 소실되었고, 어렵게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취합하여 54수를 신석정 시인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게 번역하여 《대역 매창시집》으로 발간을 하였다. 이 《대역 매창시집》 표지 제자(題字)는 조각도로 이제 막 깎아낸 듯 날렵한 전서체(篆書體)이며, 특이하게도 12㎝X25㎝ 손바닥 넓이의 가로가 좁고 긴 직사각형 책이다.

신석정 시인은 《대역 매창시집》 서문(序文)에서 먼저 ‘이화우’ 시조를 소개하고 “당나라 여류시인을 찾는다면 ‘설수’를 손꼽을 수 있는데, 이 나라의 여류시인을 찾는다면 아무래도 황진이와 더불어 매창을 들 수 있고, 매창은 천생의 서정시인이며 ‘이화우’는 언제 외워도 가슴에 절절히 울리는 것은 이렇게도 가슴 아프게 이별을 읊은 주옥(珠玉)이 없는 것이다.”라고 찬사를 했다. 또한 ‘낭주매창시집간행회(浪州梅窓詩集刊行會)’ 김형규 대표는 《대역 매창시집》 발문(跋文)에서 “우리고장 출신 여류시인 매창처럼 살아서는 불우하였고 사후에도 푸대접을 받은 재원(才媛)도 드물다. 같은 여류시인이면서도 황진이는 널리 소개되어 후세에 회자되고 있는데 우리 고을 매창은 그렇지가 못하다. 아마 지리적 조건도 많이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우리나라 문운발달(文運發達)을 위해서도 적지 않은 손실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라며 이매창의 한시들이 서정시로서도 으뜸인데 개성의 황진이에 비해 세간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신석정 시인에 의해 《대역 매창시집》도 발간되고, 1610년 아전들에 의해 거문고와 함께 묻힌 이매창의 초라했던 묘도 1983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부안군의 매창공원 내에서 잘 보호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시(詩)의 계절, 감성의 계절 11월이다. 산과 바다가 함께 공존하며 아름다운 비경(?境)을 만들어내는 국립공원 변산반도 그리고 부안은, 자연스럽게 문학의 산실이 되기에 필연적인 자연풍광을 품고 있다. 그래서 허균은 그 울창한 바위산과 바위굴을 넘나들며 축지법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하는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창작했고, 반계 유형원은 우반동에서 26권 13책의 《반계수록》을 집필했으며, 박지원도 <허생전>에서 ‘변산 도적굴’로 찾아가 그 도적들에게 백 냥씩을 나눠주며 아내와 소를 가져오게 하여 ‘그 빈 섬’으로 데려갔다. 이매창은 첫 정인 서우관과 유희경을 만나기 위해 한양에도 몇 번 올라 가보지만 매번 실망하고는 다시 부안 성황산 아래 대숲골로 내려온다. 당대 최고의 순수 서정시인 이매창, 그녀는 사랑을 나누던 정인들과의 긴 이별로 인해 슬픔과 외로움으로 병들어가면서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이 부안고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시편마다 부안의 개암사, 대숲, 달빛, 배꽃, 복숭아꽃, 버들가지 등이 그녀의 눈물만큼이나 애잔하게 등장한다. 이매창, 그녀는 오롯이 우리 부안의 여인이다.

시의 계절 11월이다. 우리 전북 부안 고을 출신 예인 이매창과 선계연 닮은 그녀의 맑은 서정시들이 앞으로 다양하게 스토리텔링화 되어, 글로벌한 문학 콘텐츠로 재조명되기를 바라본다.

정영신<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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