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깊은생각] 잘못을 직시하고 깨달음으로 거듭나자
[한번 더 깊은생각] 잘못을 직시하고 깨달음으로 거듭나자
  • 송일섭 염우구박 네이버블로거
  • 승인 2022.11.0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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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깊은생각
한번 더 깊은생각

지난달 29일, 우리는 또 하나의 퇴행의 역사에 직면하고 말았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대통령실과 가까운 용산의 이태원 골목에서 꽃다운 젊은이들이 156명이나 압사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 수학여행단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의 희생을 벌써 잊은 것일까.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지진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젊은이가 우리 곁을 떠나야 했는가. 엊그제까지만 해도 G7을 거론하며 들뜨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치욕스러운 역사를 떠안게 되었을까. 희생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되레 부끄럽기까지 하다.

10, 29 참사와 관련하여 우리가 더 절망하면서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때같은 자식들이 핼러윈 축제에 갔다가 죽어간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게다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관료들의 일성(一聲)은 마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인의 말처럼 낯설었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며 책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을 미리 배치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오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들을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때 ‘수학여행 가다 발생한 교통사고’라고 했던 말이 아프게 떠올랐다.

곧이어 서울과 지방에는 빈소가 차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하고, ‘근조’ 표기도 없는 ‘검은 리본’을 달라는 공문까지 보였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참혹한 참사에 한순간에 실어증까지 생겨버린 것일까. 차마 부끄럽고 송구스러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검은 리본으로 대신하자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막말과 거짓 변명으로 국격의 추락을 경험한 터라, 이것 또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국민을 속이는 일이 아닌가.

요즘 세상에도 공직자들이 저렇듯 기발한(?) 생각에 영혼 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정론을 펴는 데 앞장서야 방송인들까지 검은 리본 하나 달랑 차고 시청자 앞에 서는 것을 보면 작금의 상황이 총체적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라도 겸허해지는 법, 진실로 마음을 모아 망자의 명복을 빌어야 한다. 축제에 나왔던 젊은이들의 헛된 죽음은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이다. 당일 오후 여섯 시 넘어서부터 112로 걸려 온 구조의 외침을 떠올려 보라. 관료들이 어떻게 ’주체가 없는 행사’라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남 탓하기에 바쁜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국민은 절망하고 분노했다. 아픔과 절망의 순간에도 믿음의 끈 하나 잡을 수 없는 세상의 삭막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런 꼼수를 보이면서 조문 횟수를 늘리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을 가리고 책임을 회피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국민은 그럴수록 불신과 원망의 탑을 높여갔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권력으로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얼마 전, 온 국민을 상대로 청각 시험을 했던 일이 겹쳐졌다. 막말 발언 이후 홍보수석의 말도 떠올랐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겹치는 것이 나만의 일이겠는가. 대한민국의 집단지성이 이렇게 천박한 수준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감추려 하지 말라.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성찰의 기회로 삼아라. 그래야만 내일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진실을 감추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거기에는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의하면 국제적인 망신에 가까운 사고이며 인재(人災)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더라도 겸허한 자세로 진실과 마주할 때만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당당하던 자들이 112 녹취록이 공개되자 모두 입을 다물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미 국민은 다 알고 있었다. 섣불리 감추거나 변명하려 하지 말고 드러내놓고 뼈 아픈 성찰을 해야 할 때다.

 

송일섭 염우구박 네이버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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