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학으로 판을 여는 광대 임진택, 의기투합한 왕기석×송재영 명창
다시 동학으로 판을 여는 광대 임진택, 의기투합한 왕기석×송재영 명창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2.11.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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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 임진택 씨가 ‘동학’으로 또 한 번 판을 연다. 여기에는 동시대 최고의 소리꾼,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수궁가 보유자 왕기석, 춘향가 보유자 송재영 명창이 힘을 보탠다.

 정읍시가 주최하고 창작판소리연구원(원장 임진택)이 주관하는 완판 창작판소리 ‘녹두장군 전봉준’이 전주에서의 첫 공연으로 드디어 베일을 벗는다. 당초 4일 정읍 연지아트홀에서 첫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국가애도기간과 맞물려 12월 10일로 연기되면서, 10일 오후 7시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의 공연이 세계 최초의 공연으로 기록될 수 있게 됐다. 이어 19일 오후 3시에는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이 작품은 동학의 탄생과 과정을 비롯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전봉준의 활약상을 창작판소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되는 공연은 무능한 왕권과 세도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가련한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수운 최제우의 주유천하와 깨달음으로 문을 열고, 해월 최시형의 포교활동에 이어 녹두장군 전봉준의 등장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이 그려진다.

 1부는 ‘탐학을 금(禁)해주시오’를 주제로 교조 신원과 고부 봉기에 대한 내용을 그리며, 왕기석 명창의 목소리로 듣는다.

 2부는 ‘고통받는 민중은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를 주제로 무장기포와 백산포고, 황토현 전승, 전주성 입성을 다루며, 송재영 명창이 맡아 소리한다.

 3부는 ‘갑오세 가보세’를 주제로 집강소 설치, 남·북접 합작, 우금치 전투 등의 내용으로, 광대 임진택이 맡아 소리한다.

 창작판소리로 시대정신을 노래했던 ‘민중광대’ 임진택은 창작판소리 열두 바탕을 만들기로 하고, 그동안 백범 김구, 정약용, 윤상원, 장보고, 전태일, 안중근 등 역사적 인물의 삶과 정신을 소리로 재탄생시킨 바 있다.

 사실 그가 동학농민혁명사를 판소리로 짜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들 작품보다 앞선 꽤 오래전의 일이다. 1982년 친구 김민기가 동학혁명을 다룬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를 만들어 서울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할 때 그에게 도창을 부탁해 왔던 일이 있다. 당시 그는 ‘안핵사 이용태의 만행 대목’과 ‘황토현 전투 승리장면’ 두 대목을 판소리로 짜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이 부분이 들어있다.

 임 원장은 그 도창 이후 동학농민혁명 한바탕을 판소리로 담아내는 일이야말로 필생의 과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1994년 동학 100주년이 되던 해, 기념사업에 앞장서면서 동학판소리작업에 손을 대긴 했으나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채 지나가고 말았다. 28년이 지난 올해에야 그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동학농민혁명을 다루면서 40년 가까이 고민했던 부분은 동학사상과 갑오년 농민전쟁과의 관계였다. 학계와 각 지역 연구자들의 입장과 시각이 같지 않아 명칭 용어에 대한 합의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는 ‘판소리로 풀어낸 동학농민혁명사’라는 부제가 붙은 점도 동학의 사상과 조직이 갑오년 농민봉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대에 설치하는 병풍·걸개그림, 무대영상에 여운, 김정헌, 임옥상 작가의 작품이 참여했다. 故 여운 화백이 남긴 대작 ‘동학(1982)’ 김정헌 화백의 명작 ‘땅을 지키는 사람들’, ‘땅의 사람들’ 그리고 임옥상 화백의 ‘모로 누운 돌부처’, ‘들불’, ‘땅’, ‘새’ 등의 걸작이 걸개· 영상으로 사용된다.

 임진택 원장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되 한 개인을 영웅화할 의도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전봉준은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지도자요 전락가요 사상가요 혁명가이지만, 그를 어떻게 인간적으로 그려내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남겨진 과제”라면서 “옛판소리처럼 이 새로운 창작판소리도 당대에 널리 불리고 후대에 오래 전승되어 그 과정에서 많은 명창 광대들의 더늠과 기량으로 확장되고 완성되어져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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