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밤을 줍자 -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는 생태나들이
가을엔 밤을 줍자 -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는 생태나들이
  • 진영란 진안초 교사
  • 승인 2022.11.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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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아이들이랑 밤을 줍겠다고요?>  우리 진안 학교 학생들은 환경 생태 강사와 생태 나들이를 한다. 우리 마을의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3번의 나들이를 신청했다. “개나리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랑 뒷산에 가서 밤을 줍고 싶어요.”

 “네? 아이들이랑 밤을 줍겠다고요?”

 당황하시는 생태 선생님께 우리 학교 뒷산의 존재에 대해, 아이들이 그 산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곳이 밤 줍기에 딱일 것 같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이번 나들이는 향교로 가려고 했어요. 이미 답사까지 마쳤지만, 선생님의 열정에 제가 졌습니다. 그럼 학교 뒷산을 답사하고 코스를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확답을 드린 건 아니에요.”

 생태 선생님의 반승낙을 얻어냈으니, 작년부터 아이들과 해 보고 싶었던 뒷산에서 알밤줍기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생겼다.

 <밤을 주우러 갈 거예요!>“내일은 학교 뒷산으로 밤을 주우러 갈 거예요.”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궁금한 것도 많고, 에너지도 넘치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 알밤을 주우러 산에 간다는 사실은 너무나 짜릿한 제안이리라. 이것저것 산에서 지켜야할 안전수칙에 대해 토의하고, 밤송이 까는 동영상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숲에서 발견한 아이들의 빛깔>  간단히 몸을 풀고, 학교 뒷산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5분 거리인 이곳은 딱따구리가 먹이를 잡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생태 스팟이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손톱만한 밤들이 떨어져 있다. 개나리 선생님께서 밤송이를 까는 방법을 설명해 주신다. 왼발 오른발의 협응으로 밤송이에서 알밤 꺼내기에 성공한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남들보다 유독 열심히 알밤을 줍던 윤우가 비장하게 말한다. “우리 아빠가 알밤을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열심히 주울 거예요.” 교실에서 감당하기 벅찬 윤우의 에너지는 숲에서 맘껏 발현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지원이의 행동이었다. 교실에서는 수줍어서 눈도 못 마주치고, 친구 옷자락을 붙잡고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였는데, 저 혼자 알밤을 찾아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집게로 알밤을 주워서 작은 주머니에 열심히 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싱그럽고 탁 트인 배움터가 우리 지원이의 마음을 움직였구나!’

 숲에서 만난 아이들은 각자 다른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밤이 진짜 귀여워요!>  개나리 선생님의 친절하고, 자상한 안내 덕분에 가을산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저마다 가지고 간 작은 주머니들이 불룩하게 알밤도 주워왔다.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선생님, 알밤이 진짜 귀여워요. 그려보고 싶어요!” 진짜 가을의 한 복판에 풍덩 빠져본 아이들은 주워온 알밤을 가족들과 나눌 생각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도화지에 가을을 그려 보았다. 오늘 숙제는 가족들과 밤 삶아 먹기다.

 “선생님,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어요!”

 은정이가 잠시 울상을 지었다가 밤숫자를 세며 다시 밝아진다. 우리 민들레반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언젠가 상쾌한 가을 산행의 추억과 짜릿한 아픔을 함께 떠올리게 될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9살의 가을날을 말이다.

진영란 진안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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