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출신·‘80년 해직기자’ 3선… 전 의원 별세
정읍 출신·‘80년 해직기자’ 3선… 전 의원 별세
  • 연합뉴스
  • 승인 2022.10.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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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 전 의원

1980년 해직기자 출신으로 1987년 민주화로 이어진 1985년 2·12 총선 신한민주당(신민당) 돌풍을 이끌고 3선 의원을 지낸 박실(朴實) 전 의원이 29일 오전 8시29분께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3세.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고, 대학생 때 4·19 시위에 참여했다.

1963년 한국일보에 들어가 정치부 차장 시절인 1977년 한국기자협회 16대 회장을 지냈다. 1980년 1월8일에 열린 신민당 제2차 헌법개정 공청회에 ‘한국기자협회 고문’ 자격으로 참여해 ‘직선제 개헌’과 함께 헌법 전문(前文)에 언론 자유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제 해직된 뒤 1980년 11월 1차 정치활동 규제자 811명에 포함됐다. 정호출판사를 운영하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1984년 정치활동 규제 2차 해금 대상에 포함됐다. 그해 민추협 세력과 구 신민당 계열이 총집결한 신한민주당 창당에 관여했고, 창당선언문을 기초하며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지역구마다 2명을 뽑을 때인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 선거구에 출마, 1등 당선되며 신민당의 제1야당 부상에 공헌했다. 당시 ‘박해받은 실력자 박실’이라는 표어가 눈길을 끌었다. 이후 동작을 선거구에서 13·14대까지 3선 의원을 지내며 ‘민추협 출신 범동교동계’ 의원으로 활동했다.

원내에선 국회 문공위·행정위 간사, 외무위원과 국회 환경특위 위원장을 지냈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1998∼2000년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의사상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보상금도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의사상자 보호법 개정안을 입법, 1990년 법률 개정을 이끌었다.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해직 언론인’)로 인정됐다.

정계 은퇴 후에는 헌정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서울언론인클럽과 대한언론인회 이사를 맡는 등 원로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영어, 중국어, 독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실력자로 한때 주중대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국제·외교 관련 책을 여러 권 썼다. ‘취재전선 : 대사건을 둘러싼 대기자들의 비화’(1974, 한국기자협회), ‘한국외교비사’(1979, 기린원), ‘지구특파원 : 세계의 대사건을 파헤친 취재 비화’(1980, 순천당), ‘80년대의 정치전망’(1980, 한섬사), ‘벼랑 끝 외교의 승리 : 이승만 외교의 힘’(2010, 청미디어), ‘(중국 공문서와 자료로 본) 중공군의 한국전쟁’(2013, 청미디어), ‘6ㆍ25전쟁과 중공군’(2015, 청미디어) 등 저서와 ‘백악관을 향한 리건(레이건)’(1980, 한섬사), ‘비록 : 전화 속의 대사관’(1980, 한섬사), ‘이승만과 미국대사관’(1983, 정호출판사) 등 번역서가 있다.

유족은 부인 전은희씨와 사이에 2남(박정원<단국대 법대 교수>·박석원(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며느리 전아정·오진숙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30일부터는 13호실), 발인 11월1일 오전 9시, 장지 국립4·19민주묘지. ☎ 02-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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