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바시’도 몰랐던 백강균의 비밀
생물학자 ‘바시’도 몰랐던 백강균의 비밀
  • 남성희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 승인 2022.10.27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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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생물학자 ‘아고스티노 바시(Agostino Bassi)’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보다 이전 세대를 살면서 그에게 존경받을 만큼 생물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세계 양잠업 붐이 일었던 1805년경, 이탈리아의 한 농장에서 누에가 죽는 일이 처음 발생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여러 농장에서 같은 증상으로 죽는 누에가 생겼으며, 프랑스 농장에까지 질병이 번져 농장에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1807년경 바시는 누에 애벌레가 정체 모를 하얀 분말에 덮여 죽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누에를 직접 죽게 한 병원체이며 전염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강한 누에에 하얀 분말이 덮인 누에를 접촉시키자 며칠 후 건강한 누에에서도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여러 실험 끝에 1834년 누에를 병들게 하고 죽게 만든 원인이 ‘백강균’이라는 곰팡이임을 밝혀냈다.

곰팡이의 포자가 누에 표피를 뚫고 몸속에 침입해 증식 후 다시 몸을 뚫고 나와 표피에 하얀 곰팡이 포자를 만드는 것이다. 바시는 병원균인 곰팡이의 발생을 억제하는 방법과 소독제를 사용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 경제적으로 중요한 실크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시의 연구는 무려 25년이나 걸린 것으로 그의 집념이 백강균의 발견과 예방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발표되어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후 바시는 식물, 동물, 인간의 많은 질병이 병원성 유기체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루이 파스퇴르는 그의 연구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사무실에 바시의 초상화를 두었을 정도라고 한다.

백강균의 학명인 ‘보베리아 바시아나(Buauveria bassiana)’는 바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하지만 바시도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누에를 죽이던 못된 백강균이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이용되며 인류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하고 있는지 말이다.

첫 번째는 생물농약으로의 활용이다. 백강균은 작물이나 산림 등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억제하는 소재로 이용되는 등 무공해 생물농약으로 수십여 년간 연구되어 왔다. 또한 흰개미, 진딧물, 빈대, 커피천공충, 말라리아 전염성 모기 등과 같은 해충을 방제하는 생물학적 살충제로 이용되고 있다. 2000년대 전후, 우리나라 산림에 큰 피해를 준 솔잎혹파리를 백강균을 활용해 친환경적으로 방제한 예도 있다.

두 번째는 식품원료로의 활용이다. 국내에서 식품원료로 식품의 약품안전처에서 인정받은 식용곤충은 10종이다. 이중 백강균에 걸려 죽은 누에를 말린 백강잠은 누에번데기, 메뚜기와 함께 오래전부터 식품원료로 등록돼 식용하는 것이 허용되어 왔다.

세 번째는 한약원료로의 이용이다. 동의보감에는 백강균에 감염된 백강잠이 중풍, 간질 등 뇌신경계 질환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되어 있다. 생약사전에는 백강잠이 항경련, 해열, 진정작용, 최면 작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한약재 원료로 오래전부터 이용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2018년 백강잠을 소재로 파킨슨병 치료 효과를 확인하면서 동의보감에 언급된 백강잠의 한약재로서의 가치를 제고하기도 했다.

네 번째는 인체를 대상으로 한 미용소재다. 동의보감에는 ‘백강잠을 꾸준히 바르면 피부가 우윳빛이 된다’라고 적혀 있다. 실제 백강균이 멜라닌 생성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에서 발표되었으며 현재 화장품, 비누 등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이 외에도 백강균은 바이오소재로 학문, 식품소재, 의학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두루 사용되고 있으나 국내원료 생산이 거의 없어 소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유통제품 대부분은 수입원료라고 한다.

백강균을 다양한 소재로 개발하고 산업분야에 적용하려면 국내산 원료의 대량생산과 안정적인 공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강균의 용도와 효과를 꾸준히 홍보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하는 등 산업 성장을 위한 육성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누에에게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로만 알았던 백강균. 세계적 생물학자 바시가 백강균이 현대산업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재밌는 일이다. 그는 분명 본인이 발견한 균이 인류에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감격스러워 할 것이다. 앞으로 많은 과학자의 연구, 정부 부처의 육성책으로 백강균이 바이오소재로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남성희<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농업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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