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이소애 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22.10.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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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 / 문학평론가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단테의 『신곡』 (지옥 제3곡 8행~9행) 지옥의 문 위에 적혀 있는 무서운 글귀다. 가을바람이 가슴을 파고드는 요즈음 나쁜 짓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위로해주는 짧은 글이다. 지옥이 궁금한 이유도 점점 희망이 떠오르지 않아서이다.

하루의 시간표를 두려움이 끌고 다니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를 기다리는 초침 소리가 감정을 끌고 다닌다. 창밖 모악산 꼭대기가 하늘을 찌를 듯 보이지만 내 발로 오를 수 없는 사람들에겐 삶의 원동력이 될 희망을 품어야 산다. 절실하다.

희망을 꼭 붙잡고 사는 거다. 내 몸으로 즐길 수 없는 곳으로 갈 때는 옛 기억을 불러서 즐겨보는 행복한 청춘으로 살아야 죽지 않는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버킷 리스트는 의욕이 없고 삶에 지친 듯 무의미하게 살면서 치매증세가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유 능력이 있다.

나의 ‘소망 목록’의 첫 번째가 사후세계를 순례하는 『신곡』을 꼼꼼하게 챙겨 읽어 보는 것이었다. 인간이 만든 것 중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책이어서 밑줄을 그어가며 지옥의 문을 두드려 보는 심적인 충동은 화가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본 후였다. 『단테』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림에 회화적 복수심 같은 충동을 느꼈다.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알게 된 단테는 처음 보는 순간 온몸의 혈관이 떨리고 영혼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사랑의 포로가 된 청춘의 색은 무슨 색이었을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랑이기에 두 번 만난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단테의 문학에 생명력을 불어넣게 되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피렌체의 ‘산타 트리나’ 다리를 건너볼까? 가을 책 속의 여행을 떠나듯 옛 기억을 불러서 산타 트리나 다리를 친구들과 걸으면서 상상 속의 남자를 만나보는 달콤한 그림을 그려보는 재미도 솔솔 했다. 그녀처럼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는 운명이 아닌, 더욱 강렬해지고 풋풋한 사랑을 받고 싶은 꿈은 지금도 팔딱팔딱 뛴다. 생각만 하여도 사후세계를 순례하기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경험하고 싶은 욕망으로 책장을 뒤척이는 것이다. 딱 두 번의 만남이 한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게 한 여성의 마력은 무엇일까? 베아트리체는 사랑을 감추려고 했던 단테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넨다. 그 만남을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보았다.

『신곡』은 망명 생활 중에 글을 썼다. 고향을 떠난 방랑의 고통과 괴로움이 세계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신곡』은 개인적인 삶과 고뇌 희망과 좌절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에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이 고통을 통해 이상적으로 승화되었듯이 삶의 고난 속에서 탄생한 『신곡』은 나의 삶과 상통하는 친밀감을 주었다.

지구 위를 걷는 사람 중 단테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는 『신곡』. 시공을 초월한 작품은 책장을 넘길수록 춥고 멈춰져 있는 내가 된다. 어둡다는 지옥을 순례하면서 생의 설계를 만들어 본다. 희망을 꿈꾸며 순례하는 시인의 자세는 가장 낮은 자세였다. 책 속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단풍과 물소리가 들리는 책을 읽는다.

지루하면 <슬픈 베아트리체> 조용필의 노래를 들어보는 감미로운 선율도 만끽해 보는 가을 순례였다. 말러의 ‘단테의 교향곡’을 감상하면서 14,233행의 사후세계 순례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정확한 기준이 있는 지옥이어서 내가 살아온 과거를 성찰하고 참회하는 충동이 일기도 한다. 저승 세계를 순례하면서 단테는 많은 영혼을 만난다. 방문하는 곳곳 생생한 묘사는 현실감이 넘쳤다. 『신곡』의 여행은 삶과 연결되고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탐욕이 내 영혼의 병이었듯이 죄의 허물을 벗는 참회의 마음가짐도 단풍이 물들어 가듯 곱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빛과 희망이 떠나가지 않도록 인간의 언어로 붙잡아 두는 일은 천국의 삶과 같을 것이다. 기억의 감정을 불러서 최고의 행복을 누려보는 희망, 태양의 찬란한 빛을 가슴으로 보듬어서 ‘나’로 사는 것이 버킷 리스트 첫 번째이다.

이소애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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