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상상하기 - 지리산을 오르며 배우는 교육 (하)
작은 학교 상상하기 - 지리산을 오르며 배우는 교육 (하)
  • 윤일호 장승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2.10.19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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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배려와 협력 교육이다. 다섯 끼 밥을 먹기 위해 필요한 코펠과 가스, 버너를 들고 가야 한다. 가방 없이 맨손으로 걸어도 힘들고, 아무리 작은 물병 하나도 무겁게 느끼는 게 힘든 산길이다. 그런데 그 짐을 모둠원끼리 함께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 여러 해 지나면서 자연스레 무거운 코펠은 6학년이 들고 가는 전통이 생겼고, 가스와 버너는 아이들끼리 역할을 분담해서 들고 간다. 2박 3일이다 보니 저마다 가방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모둠에서 산을 잘 타는 정도나 가방 무게를 서로 살펴서 짐을 적절하게 나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아이들이 이기적이라는데 미래 우리 아이들을 위해 최고의 교육이 아닌가.

 어진이형 / 김진기(장승초 6학년)

 지리산 길을 가다가

 어진이 형이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도와주었더니

 내가 들고 있던

 코펠을 들어준다.

 미안하다.

 힘들까 봐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나도 힘들어서

 달라고 하기 싫었다.

 진짜 미안했다.(2013.9.23)

 ▲네 번째로 자립 교육이다.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 첫날 저녁 식사와 둘째 날 세 끼 그리고 셋째 날 아침까지 총 다섯 끼 밥을 먹기 위해 식단을 짜야 한다. 또 그 식단에 맞게 밥을 해 먹어야 한다. 물론 코펠을 쓰고 정리하는 법도 알아야 하고, 휴대용 버너 쓰는 법도 알아야 한다. 산에 가면 산에 맞게 밥을 안칠 때 물 조절과 가스버너 불 조절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활동은 사전교육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평소 해보지 않은 활동이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스스로 하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아이들은 다섯 끼 식사를 위해 개인이 준비할 것과 모둠에서 준비할 것을 정하고 자신의 역할에 따라 행동한다.

 

 집밥이 먹고 싶다 / 이민준(장승초 5학년)

 우리는 짜장볶음밥을 먹는다.

 너무 맛있다.

 밥이 좀 안 익었다.

 좀 딱딱하다.

 집밥이 먹고 싶다.

 집밥이 그립다.(2022.9.28.)

 ▲다섯 번째로 성취감 교육이다. 36킬로미터를 걷는 2박 3일 종주는 엄청나게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와! 올라오길 잘했어.” “정말 엄청 멋있다.”하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천왕봉 일출의 기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리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려한 지리산의 자연과 2박 3일 동안 하나 되는 경험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마지막 백무동까지 절뚝거리며 도착했을 때 짜릿함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천왕봉 일출 / 양우진

 지리산 마지막 코스

 바로 천왕봉 일출이다.

 장터목에서 바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새벽이라서

 길이 너무 험했다.

 이제 지리산 제일 힘든 코스

 천왕봉에 도착했다.

 내 발이 구름 위에 있다.

 잠시 후 일출이 나온다.

 어른들도 일출 보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그걸 내가 봤다.

 진짜 말이 필요 없었다.

 마치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것 같았다.(2022.9.28.)

 

 AI, 메타버스, 에듀테크도 좋겠지만 예절, 환경, 배려와 협력, 자립, 성취감 이런 것이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갖추어야 할 더 큰 역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이번 종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첫날, 16킬로미터나 걷는 것과 두 해 종주를 안 했기에 더 걱정이 컸다. 또 코로나19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2박3일 숙박을 하는 과정은 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지극히 더 교육적이지 않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교육공동체 누구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둠끼리 협력을 더 잘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더 인사도 잘하고, 함께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산행이었다. 졸업생도 세 명이 참여했는데 동생들을 살피고, 함께 하면서 용기를 주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더군다나 학부모 네 분이 앞뒤로 아이들을 보살피며 가는 종주길은 따스함이 묻어났다.

 내 무릎은 살살 아파 오고,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이번 종주는 그 어떤 칭찬을 해도 아깝지 않았던 최고의 산행이었다. 함께 다녀온 아내가 옆에서 살짝 한마디 거든다.

 “신랑, 이제 어른들 별로 갈 사람도 없는데 2년에 한 번씩 가.”

 

 윤일호 장승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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