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의 말의 품격
정치에서의 말의 품격
  •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 승인 2022.10.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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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대한민국은 목하 ‘바이든’ 대 ‘날리면’의 전쟁 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되어 전 정부 정책의 공과에 대한 평가와 현 정부 6개월에 대한 평가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있어야 하지만 여의도는 아직 뉴욕발 정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실에 대한 규명은 이미 어려워졌고 정치적 공방에 사법적 판단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다.

바이든 대통령 자신도 적절하지 않은 표현으로 곤란을 겪었다.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기자에게 “멍청한 XXX”라고 원색적인 욕을 한 적도 있고, 상대방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깔끔한 사과와 유감 표현으로 더 이상의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류에 대한 인정과 사과, 그리고 언어 자체의 품격이다.

발단은 대통령이 사용한 비속어였다. 저잣거리에서나 쓸 법한 단어들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술자리도 아닌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냥 불쑥 내뱉은 데 있다. 언론들이 죽 따라붙고 있었고 그대로 방송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아무리 그것이 검사 시절 입에 붙은 말들이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직의 무거움을 알고 있다면, 대통령의 처신에 대해 깊은 고민이 있었다면 “그냥 불쑥”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수습하려 애쓰는 청와대 홍보수석실도 딱하고, 오히려 전선을 넓히면서 대통령을 엄호하려는 여당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익히 보아왔던 모습에서 한 발짝도 달라지지 않은 한국 정치의 모습은 더욱 절망적이다.

말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나왔을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에게 말은 정부와 국민을 잇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말의 무게는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국제외교에 이르기까지,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에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과거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국가 지도자의 말에는 자신의 지문이 박힌 표현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상징성, 대통령직의 막중함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도모하며 국격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파문을 통해 대통령의 말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화합을 해치며 국격을 떨어뜨렸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가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이유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제되고 품격있는 언어사용으로 호평을 받았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설득력 있는 연설을 통해서 그의 재임 동안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그중 아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후,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온 51초 침묵의 연설은 미국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역시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고 한 말이 회자된 바 있다. 그런 말의 품격을 우리 정치에서도 보고 싶다.

경제는 지금 퍼팩트 스톰이라고 할만한 복합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고환율, 저성장, 고금리, 무역 적자등 사면초가 형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약이 없고, 동맹국 미국은 느닷없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들고 나와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 절체절명의 시대에 리더의 언어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지는 못할망정 갈등의 씨앗이 되어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작금의 이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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