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함정
숫자의 함정
  •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 승인 2022.09.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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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김성철 전북은행 부행장

우리의 삶은 숫자와 밀접하다.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하고, 오늘의 날짜와 주식, 환율, 코로나19 확진자수, 고지서에 적힌 청구금액 등 수많은 숫자에 얽매여 살아간다.

어떤 자료에 신뢰도를 높이고 싶을 때 그래프나 통계 같은 수치들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숫자에 대해 ‘정확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굳게 믿는 숫자와 통계에서도 오류는 허다하다. 또 같은 숫자라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단순히 1+1=2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보이는 숫자대로 단순 평가해 버린다면 우리의 삶은 교만해지거나 혹은 너무 초라해지고 말 것이다.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극과 극을 달릴 수도 있다.

지난달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예대금리차 비교공시가 시행됨에 따라 은행별 예대금리차가 공시됐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전북은행은 6.33%로 예대금리차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단순 수치 비교의 결괏값으로 이 숫자의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경우는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이 높은 경우, 주담대보다 신용대출비중이 높은 경우, 저신용자 겨냥 정책성 상품 취급 비중이 높은 경우, 금융채 발행 비중이 높은 경우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대출 상품 취급 종류와 조달 방법에 따라서 예대금리차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지양해야 한다. 예대금리차가 높다 해서 대출 금리가 꼭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북은행의 6.33%라는 수치에 대한 진실은 이렇다. 전북은행의 가계대출 비중 중 타 은행들이 취급을 꺼리는 중·저신용자와 외국인 등 서민금융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4.1%에 달한다. 이러한 취약계층을 위한 중금리 대출을 제외하면 당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5.33%로 수신금리 3.13% 차감 시 실질적인 예대금리차는 2.20%로 타 은행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공시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 당행의 정기성 예금 금리는 최고 3.6%로 19개 금융기관 중 가장 높으며, 7월 중 예금가중 평균금리는 3.13%로 지방은행 중 최고 수준이다.

당행은 2금융권으로 흘러갈 중·저신용자 및 올해 은행권 최초로 시작한 외국인 대출 등 다양한 계층에게 폭넓게 지원하다 보니 대출금리가 높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금융취약계층의 대출을 지원하다 보니 대출금리가 높아진 것이다.

은행이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 저신용 차주의 대출을 줄이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대출 문턱은 높아지고 고신용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금리상승으로 대출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물가 상승으로 필요한 돈은 늘었는데 금리상승과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겹치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졌다. 또 제2금융권과 대부업에서도 밀린 취약계층은 최악의 경우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그동안 포용적 금융을 실천하며 폭넓은 금융지원을 해 온 은행들이 예대금리차 관리를 위해 중·저신용자들을 가려 받는다면 취약 차주들은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전북은행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대부업체 등으로 내몰리는 중·저신용자 등 금융소외계층에게 신용 회복의 기회를 부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상생경영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서민금융활성화 정책에도 부응하는 것이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예대금리차 공시처럼 단순 수치 비교에 가려져 정작 금융지원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어내는 빌미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전북은행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따뜻한 금융’이다. 어려운 지역여건 속에서도 금융으로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한 역할에 충실할 것이며,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숫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객들을 위한 우리만의 가치를 지켜나갈 것이다.

김성철<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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