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님으로부터 실험용 쥐 100마리와 함께 우리 대학 인근 역을 지나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그동안은 실험실로 배달되었는데 사정이 생겨 직접 운반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항공사에서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고 하여 기차와 배를 이용한다고 했다. 목포에는 학생들과 취업캠프를 가던 숙소가 있어 예약해 드렸다. 그러나 부두 근처에 묵어야겠다며 예약을 취소하라는 연락이 와서 예약을 취소했다. 쥐 100마리와 함께 투숙한다면 예약을 받아주었을지, 혹시라도 숙소에서 쥐가 탈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을 했다. 나의 상상은 7년이 지난 2021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미국에서 의학 실험용 원숭이들이 탈출해 경찰이 수색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다. 사연인즉 필라델피아 인근 고속도로에서 원숭이를 실은 트럭이 다른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실험용 원숭이 100마리 중 4마리가 탈출했다는 것이었다. 경찰과 야생동물 보호당국이 수색하여 다음 날 오전까지 3마리를 찾았다며, 못 찾은 1마리를 발견하면 직접 잡으려 하지 말고 신고할 것을 당부하였다. 탈출한 원숭이는 한 마리당 1만 달러(약 1,200만원)라는 보도였다.
군대 이야기처럼 실험실 이야기도 한번 나오면 끝이 없다. 동물실험실에는 쥐(rat), 생쥐(mouse), 기니피그(guiapig) 등 여러 동물이 있는데,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실험하는 동물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기에 어려운 실험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박사과정일 때 석사과정생의 실험에 대해 정기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실험에 열중했고 결과도 잘 나오고 있었는데, 그 학생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실험실에 오래 있다보니 몸에서 쥐 냄새가 나서, 버스에 오르면 사람들이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알아 민망하다는 것이었다. 환기 시설 등 실험실 여건이 미흡하여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쥐를 희생하는 날은 더 바쁠 수밖에 없는데, 아침 일찍 만난 그녀의 손에는 작고 예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희생한 쥐를 실험실 근처 소나무 밑에 묻어주고 헌화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만났더니 묵념하면서 눈물도 흘렸다고 했다.
실험동물들도 사람처럼 개개의 특성이 있다. 한번은 흰쥐에게 매일 일정 시간 규칙적으로 런닝머신에서 운동을 시켜야 했다. 쥐를 트레이드밀에 올리면 어떤 쥐는 모범생처럼 앞만 바라보고 성실하게 달리지만, 어떤 쥐는 벨트 옆 작은 공간에 앞뒤 왼발을 대놓고, 앞뒤 오른발만 벨트 위에서 달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럴 경우 실험 조건이 달라지므로 실험자는 애가 탄다, 어떤 쥐는 운동을 싫어해 벨트 끝까지 밀려가서 털이 벨트 끝에 끼이면 아프다고 찍찍 소리를 질러댄다. 한 대학원생의 마지막 실험은 큰 통에 물을 가득 담고 수영으로 지구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었다. 점심부터 실험을 시작해 오후 늦게까지는 마치려고 계획했으나, 예상 외로 쥐 한 마리가 지구력이 좋아 새벽까지 수영하여 밤을 꼬박 새웠다며 울상이었다.
외국 연구 기간이 1년으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비만쥐의 가격이 비싸다며 나의 공동연구자는 실험실에서 비만쥐를 교배시켰으니 태어나는 새끼쥐를 사용하자고 했다. 나는 매일 아침 동물실험실에 들러 배가 두둑해 보이는 쥐들을 바라보며 새끼가 빨리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비만쥐는 서너 마리만 태어났다. 비만 부모 사이에서 비만 자녀가 태어날 확률이 9%라는 교과서의 정석이 쥐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실험 주제를 바꾸었는데, 이번에는 연구윤리위원회를 통과해야 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월 1회 개최되는데, 3주 후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매어쓰지는 못한다’는 속담처럼 마음은 급했지만 절차를 지켜야 했다. 실험을 마친 동물은 냉동고에 보관해야 했고 전문업체에서 수거해 갔다. 실험동물을 땅에 묻는 등은 안전의 위해가 있으므로 금지되어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일명 실험동물법이 제정되었다. 실험동물법은 식품, 건강기능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개발, 안전관리 등에 적용된다. 실험동물운영위원회에서는 실험동물의 사육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심의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실험동물을 운반할 때 실험동물의 건강과 안전이 확보되는 수송 장치와 온도, 환기 등 환경 조건이 적절하게 유지되는 수송 수단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연구를 위하여 더 많은 동물이 실험에 사용되고 있다. 실험동물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실험실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고마워할 대상이 참으로 많다.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는 실험동물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 인간이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실험동물의 희생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박은숙 <원광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