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힐링여행이 가능한 정읍 4경 무성서원과 김명관 고택
사계절 힐링여행이 가능한 정읍 4경 무성서원과 김명관 고택
  • 정읍=강민철 기자
  • 승인 2022.09.01 17: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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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서원

사계절 여행이 가능하고 역사가 묻어있는 정읍의 아홉개 명소 구경(九景)중 4경 무성서원과 가족들이 즐길수 있는 칠보물테마파크 여행을 떠나보자.

정읍은 천년의 시공을 넘어 전해오는 가슴 아픈 사랑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와 민중들의 기개와 저력을 보여준 동학농민혁명을 품은 땅과 사람들. 그리고 사계절 아름다운 명산이자 국내 최고 단풍명소 내장산과 크고 작은 산들에 감싸인 듯 포근히 안긴 모습이 인상적인 물 맑은 옥정호를 비롯한 산과 호수. 그들이 품은 이야기는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끝이 없다.

정읍9경 ▲1경 국립공원 내장산 단풍터널 ▲2경 옥정호 구절초지방정원 ▲3경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공원 ▲4경 무성서원과 상춘공원 ▲5경 백제가요 정읍사문화공원 ▲6경 피향정 연꽃 ▲7경 정읍천 벚꽃길 ▲8경 전설의 쌍화차거리 ▲9경 백정기의사 기념관 등이다.

그중에 정읍시 동남쪽에 위치한 정읍시 칠보면 인근에 있는 정읍의 자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무성서원이 있다.

무성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다.

하늘이 유난히 푸르렀기 때문일까. 발에 밟히는 모래알 하나까지도 조심스럽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품 안으로 들어서다니. 분명 사람이 살고 있을 터인데,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한국의 서원은 유생들의 공부를 위해 마을과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의 중심에 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배우고자 하는 자의 나이, 직업에 상관없이 책을 읽고 싶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최치원 선생의 뜻이 담겨 민가 옆에 위치하게 됐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인 무성서원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반듯한 선비의 풍모를 느끼게 한다.

2021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무성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을 엮어‘한국의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중에서도 무성서원은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으로 1968년 사적 제166호로 지정되었다.

무성서원의 이름은 숙종 22년인 1696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숙종이 내린 사액(賜額) ‘무성’은 공자의 제자 자유(遊)가 스승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잘 다스렸던 중국의 무성현(武成縣)에서 따왔다. 자유가 예와 악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누렸던 무성 고을처럼 최치원 선생도 이곳 태산 고을을 잘 다스렸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한다.

홍살문을 지나 공부하다 지친 유생들이 휴식을 취했을 현가루(絃歌樓)를 향한다. 외삼문 대신 1891년 건립된 전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에서 따온 말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식공간인 현가루를 지나 학습공간인 명륜당,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이어지는데 간결하고 소박한 짜임새가 경쾌하다.

항일 독립운동의 산실! 나라가 위급할 땐 붓 대신 칼!

무성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항일 의병이 일어난 서원이다.

당시 최익현, 임병찬 의병장이 필두로 내장산을 넘어 순창으로 넘어가 의병 활동을 했다.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서원의 양반들이 붓을 내려놓고 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항일 구국 의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2년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記蹟碑)를 세워졌다.

무성서원 강당에는 총 6개의 주련이 있다.

기둥에 있는 글자를 주련이라고 한다.

주련에 있는 글을 읽어 보면 그 서원이 어떤 기능을 했고 선비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공부했는지 알 수 있다.

오른쪽 두 개는 선왕들에게 예를 다하고 제사를 지낸다는 내용이 있고 가운데 두 개는 학문을 다한다는 내용과 왼쪽 두 개는 덕을 쌓고 향약을 만들고 실행했다는 내용이 있다.

향교나 서원에 가면 안쪽에 있는 내삼문의 천장을 낮게 만들어 놓았다.

안에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선비들은 갓을 쓰고 있었으니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예를 갖춰 들어가라는 뜻이 담긴 조상의 지혜라고 보면 된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태산사는 7인(최치원·정극인·신잠·송세림·정언충·김약묵·김관)의 제향 인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제향 의례를 시행하고 있다. 위패를 실제로 볼 수 있는 날도 이때뿐이다. 태산사 우측에 아름드리 나무가 있다.

‘은행나무처럼 부패에 물들지 말고 배롱나무처럼 바르게 성장하라’는 뜻을 담아 심었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심지 않았던 선비들의 뜻이 뿌리부터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김명관 고택

▲무성서원에서 전주방향으로 차로 10여분 거리 산외면 소재에 고즈넉한 아흔아홉칸집 김명관 고택(金命寬 古宅)도 가볼만 한곳이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조선시대 상류주택인 김동수 가옥의 명칭이 지난해 12월 27일자 관보에 공고됨으로써 김명관 고택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중요민속문화재 제 26호(1971. 5. 27. 지정)인 김명관 고택은 김동수의 6대조 김명관(金命寬)이 1784년(정조 8)에 건립한 일명 아흔아홉칸집 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하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에 들어서 있다.

바깥행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시 안 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좌우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한 특이한 평면의 안채가 있다.

 김동수의 6대 할아버지인 김명관이 조선 정조 8년(1784)에 세운 집이다. 뒷쪽으로 창하산이 있고 앞쪽에는 동진강 상류가 흐르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 풍수지리에서 명당이라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루고 있다.

건물들은 행랑채·사랑채·안행랑채·안채·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과 바깥행랑채가 있고 바깥행랑의 동남쪽에 있는 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문간채가 있다.

사랑채 서쪽으로 ‘ㄷ’자형의 안행랑채를 배치하였는데 그 앞쪽으로 ‘ㄷ’자 평면을 가진 안채가 있다.

안채는 좌우 대칭을 이루게 지어 좌우 돌출된 부분에 부엌을 배치하고 있는 특이한 평면을 갖추고 있다.

안채의 서남쪽에 있는 안사랑채는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일꾼들이 기거했던 곳이라고 한다.

소박한 구조와 건축가의 독창성, 조선후기 사대부 가옥의 중후한 모습을 대체로 원형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

안채의 서남쪽으로는 안사랑채가 있는데 입향조(入鄕祖)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 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처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 한다.

또 안채의 동북쪽에는 작은 사당이 있으며, 집 주위에 8채의 호지집(노비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2채만 남아있다.

이 가옥은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건립자의 독창성이 잘 나타나 있는 것으로 꼽힌다.

230여년 동안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원형대로 보존되어 온 이 집은 균형미가 넘쳐나며, 처마의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정읍=강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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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2022-09-01 2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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