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의 시대, 인문학 육성 기회의 시간
‘문송’의 시대, 인문학 육성 기회의 시간
  • 송양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22.09.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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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지난 10년 사이 인문계열 학과 수와 입학정원은 2012년 976개 학과 4만6108명에서 2020년 828개 학과 3만7352명으로, 148개 학과가 사라지고 입학정원은 8,756명 줄었다. 오래 전부터 대학가에서 나돌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정부는 이공계 인력양성만 대대적으로 외치고, 취업시장에서도 인문계열의 소외가 이어지면서 일부 사립대에선 인문학 관련 학과를 폐과하는 일도 왕왕 들려온다. 그야말로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제2차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대학의 인문학 교육 및 연구역량 강화 지원과 국립대의 기초·보호학문 육성의 공적 역할 수행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학생 장학금 지원, 학문후속세대 지원과 더불어 인문학 중심의 융·복합 연구 수행을 위한 연구소 지원 등의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2021년까지 5년동안 시행된 1차 진흥정책에 이어 인문학의 외연 확장을 범정부 차원에서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하지만 초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인해 아이러니하게 인문학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 성공적으로 적용되면서 오히려 인간 사회를 이해하고 가치를 고민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의 지능윤리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인간 사회의 가치와 철학을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찾고자 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융·복합의 시대’ 역시 인문학이 근간이 될 수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대학에서도 인문학에 기반을 둔 융·복합 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서울 소재 대학들은 인문학과 디지털을 접목한 융·복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인문계열 학생은 인문학을 기본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을 결합해 관련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공계 학생들 역시 전공과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교육과 비교과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전북대 역시 정부 인문역량강화사업(CORE사업)을 통해 인문학과 타 전공 분야와의 융·복합을 추진했고, 최근에도 인문학과 디지털을 결합한 비교과 영역의 교육을 시작했다.

 이러한 대학 주도의 인문학 기반 융·복합 교육은 기초·보호학문 육성의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거점국립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인문사회계열 교양 및 전공과목 특성화를 통해 이공계열과의 다채로운 융·복합을 시도하고, 지역의 타 대학으로 성과를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를 거듭하는 사회 요구를 수렴한 교양 및 전공교육과정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과목 운영을 위한 대학의 적극적 지원이 맞물려야 한다. 동시에 지역거점대학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한 인문학 교육서비스도 확대돼야 한다. 올해부터 전북대 평생교육원이 지역민을 위한 무료 인문학 강좌를 처음 시작한 것은 인문학에 대한 지역 저변 확대를 대학이 앞장서고 있는 좋은 사례다.

 빨리진 4차 산업혁명의 시계 속 날로 심화되는 경쟁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모든 학문 간 융·복합의 바탕이다. 때문에 최고의 상아탑인 대학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양성은 필수적 요소다. 이는 전공간의 경계를 허문 교육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그간 과학기술 인력양성에 상대적으로 힘을 쏟았던 정부의 인문학 육성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도 필요하다. 지난해 말 마련된 두 번째 인문학 진흥 계획에 더해 인문학 융·복합 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거점국립대학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인문학 육성의 기회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송양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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