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 안호영 국회의원
  • 승인 2022.08.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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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국회의원
안호영 국회의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곧잘 들려오는 농담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가까운 미래에 식량수입청 따위로 이름이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뼈있는 우스갯소리다. 혹자는 얼토당토않다 하겠지만, 쉬이 웃어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8%다. 곡물로 범위를 좁히면 수치는 반도 더 토막이 난 20.2%에 불과하다. 이는 OECD 최하위 수준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으로 자리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곡물자급률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주식인 쌀의 자급률이 90%를 상회하며 이 수치를 홀로 받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제2의 주식이 된 밀은 물론, 곡물사료의 주재료인 옥수수 자급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이 국내 곡물 가격 폭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그렇다면 쌀이라고 위기와는 전혀 무관할까. 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작년 8월 80kg 산지 쌀값은 22만 3천 원에 달했지만, 올해 같은 달에는 23%p 폭락한 17만 2천 원까지 떨어졌다. 밥 한 공기 분량 쌀 100g 값이 300원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1977년 정부의 쌀값 조사가 시작된 이래 45년 만의 최대 폭락이다.

쌀값은 무섭게 떨어지는데, 비료값과 기름값은 치솟았다. 농민들은 애써 일궈 풍년이 찾아온 밭을 제 손으로 갈아엎으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쌀을 수매해 유통량을 줄이는 시장격리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머뭇거리고만 있다. 대체 누가 벼농사를 계속 지으려 하겠는가. 수입을 통해 국민의 식량을 책임지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지만, 그 생산기반을 지킬 책무가 더 높은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9월 1일 시작하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자동시장격리 법제화를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것을 천명했다. 이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협조 여부야말로 농민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햅쌀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추석 전이 마지노선이다. 지금이라도 쌀 10만 톤을 추가로 수매하는 4차 시장격리를 통해 쌀값 폭락을 막아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해결책보다 중요한 것은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다. 농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외면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안정 대책으로 농축산물 수입 확대 카드를 내놓았다. 농림부장관은 대형마트를 찾아 수입 돼지고기 할인 행사를 격려했다. 주무부처 장관이 수입육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것을 본 농가들은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을 것인가.

물가 안정만큼 중요한 것이 농가 소득 안정이다. 쌀값 폭락과 농산물 수입 확대로 농가 소득이 줄어들면 농업 기반과 농촌 경제를 붕괴시키고, 지역 소멸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농업의 붕괴라는 눈 위에 기후위기와 혼돈의 국제정세라는 서리가 쌓이면, 2021년 식량안보지수(GFSI) 순위 32위에 불과한 우리의 식량안보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는, 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일 것이 자명하다.

쌀 공급이 수요를 상회하는 것이 문제라면 농사 품목의 다양성을 유도하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2018-2020년 3년간 3,423억 원을 투입해 논타작물재배지원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벼 재배면적이 2만ha 이상 감소하고, 80kg 산지 쌀값은 2017년 15만 원대 초반에서 2020년 21만 원대 후반으로 상승했다. 훌륭한 성공사례도 이미 있는 셈이다.

예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사를 국가의 큰 뿌리로 인식했다. 농업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농가 소득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뿌리가 더 빨리 메말라가기만 하는 악화일로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가수 오승근 씨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안호영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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