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 보물 가야 고분 유적지
장수의 보물 가야 고분 유적지
  •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 승인 2022.08.25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바람이 선선하다. 그 바람결 따라 가을 내음이 코끝에 전해진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코로나 잔재가 아직도 살아남아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서로들 조심하면서 감기의 먼 친척쯤 되는, 아주 많이 반갑지 않은, 그 코로나 친척과 어쩔 수 없이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여름 무더위가 어느 순간 사라지니 여기저기에서 문학기행이나 역사탐방 등의 행사가 많아진다. 단순히 자연경관 찾아 떠나는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역사나 문학기행은 더 마음이 설레고 보람이 있다. 그 분야의 저명한 인사나 전문가들이 동행하기 때문에 흔하지 않게 많은 역사문화 지식을 접하게 된다. 또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행인들과의 만남과 교류도 매우 유익하다.

장수로 역사탐방을 갔다. 문학기행도 갔었다. 문학기행 때는 변영로의 ‘논개’를 떠올리며 논개사당을 방문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일본 적장을 끌어안고 깊은 강에 몸을 던진 애국 여성 논개, 그 붉은 애국 충절의 영혼이 오늘도 장수고을 온 산야에 머물며 고향 장수를 지켜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논개의 그 붉은 열정과 애국 충절의 마음 따라 장수는 전국 최초로 그 붉은색의 농업생산품과 자연물을 대상으로 ‘장수한우랑사과랑 레드컬러 축제’를 개최해서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그 5대 레드컬러의 주인공은 장수의 붉은 사과, 붉은 토마토, 붉은 오미자 열매, 붉은 한우, 붉은 철이다.

장수와 붉은 철의 연관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또 생소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장수는 고대로부터 철과 철기류의 생산지로 더 유명한 곳이다. 학창시절 역사 공부를 하면서 철기시대의 주역은 김해 인근의 금관가야 등 6대 가야국이라고 배웠다. 역사는 철저하게 승자의 기록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많은 고대 관련 기록물들은 신라 중심이다. 장수는 백제의 땅이다. 그러니 철기 관련 역사도 당연히 신라 중심, 김해 등지의 가야 중심, 영남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어떤 절대권력의 힘의 논리에 의해 사실인 역사가 허구의 소설로 왜곡될 수는 없다.

이미 대부분의 가야 관련 학술 저서나 드라마까지도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가야 유적지는 영남지역 가야로 인식되고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이어야 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굴되는 객관적인 유물과 유적지에 의해 기존의 사실이 아닌, 통상적인 연구 결과는 새롭게 재조명되고 원칙대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전북가야문화연구소의 곽장근 소장과 백제역사문화를 연구하는 송화섭 교수, 김경민 원장 등이 정기적으로 장수 가야 고분 유적지 등, 전북의 역사 유물 유적지를 찾아서 답사하고 탐방을 하며, 연구자들과 도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처음으로 실제 장수가야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에 가 보았다. 삼봉리의 부부고분과 고기리 고분, 난평마을 고분, 탑동마을 고분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서로 쌍으로 붙은 4개의 고분을 복원하고 다시 바로 아래 두 개의 고분을 발굴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갔다. “탁, 탁, 탁,” 젊은 발굴단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며칠 큰비가 내린 탓인지 황토에 묻힌 고총의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도 손으로 정성껏 닦아가며 발굴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북가야문화연구소의 곽장근 교수는 30여 년간 경주의 선덕여왕이나 진성여왕 능보다도 훨씬 규모가 큰 장수가야의 고분들 내부를 발굴해서 깨어진 도기와 붉게 녹이 슨 말편자, 금동신발 등을 조심스럽게 건져 올렸다.

이러한 장수가야 고분군에서 발굴된 도자기류는 지배자층이 아닌 일반 백성의 고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상의 왕실이나 귀족가문에서나 사용했을 것 같은 최고의 명품이었다. 또한 장수와 장계 산야의 곳곳에서는 지금도 니켈과 철성분이 다량 함유된 고급의 암석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이것은 반파(伴跛)가야국과 기문(己汶)가야국의 왕궁터인 장수가야가 최고급의 제철 생산국으로서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더위가 쉰다는 처서(處暑)가 지나고 백로(白露)가 다가온다. 마지막 태양빛을 온몸에 받으며 검보라 머루포도가 익어가는 8월의 마지막 주,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이는 제법 깊은 직사각형의 고분 안 내부는 마치 돌담처럼 그만그만한 잔돌들이 정교하게 쌓아 올려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좀 더 작은 돌담이 둘려진 고분들이 둥글게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고대 지배계급층이 사망 시에 노비 등을 순장의 형태로 생매장했던 풍습의 잔재인 것 같다고 했다. “도란도란 도란……” 그 고분 안에서 1000년 너머 가야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도란도란 다정한 그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분다. 9월이 오고 이제 곧 한가위 추석이다. 우리 전북의 장수가 사과뿐만이 아니고 제철의 왕국이며, 물산이 풍족한 부유한 마한, 백제, 반파가야, 기문가야의 왕궁터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장수가야의 유물과 유적지들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사시사철 전 세계 관광객들이 붐비기를 기대해 본다.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