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행동은 아름다운 기억에서 나온다
아름다운 행동은 아름다운 기억에서 나온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8.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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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는 참 아름답다. 푸른 나뭇잎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여름 무더위를 달래는 소리다. 검은등뻐꾸기 새 이름이 홀딱 벗고 새, 왈왈왈왈 새, 에구아파 새라고도 부른다니 웃음이 입 가장자리로 퍼진다. 잠시 청량한 새소리에 매료되어서 ‘탁란’을 깜박 잊었다. 구슬픈 울음소리는 한 번도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새끼 뻐꾸기에게 어미의 목소리를 각인시키려는 수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뻐꾸기 같은 내 주위 사람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비비새의 둥지에서 자란 뻐꾸기는 어떻게 언제 어미 새를 알아보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뻐꾸기는 왜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을까 하는 얄미운 생각이 떠올랐다. 아름답던 뻐꾸기 울음소리가 잠깐 멈추는지 들리지 않았다. 다 자란 뻐꾸기가 알을 맡길 때 어린 시절 각인된 어미 새를 찾아가는지 아니면 낯익은 서식지를 찾는지 더욱 알고 싶어졌다. 뻐꾸기는 숙주의 서식지가 아닌 숙주의 종류를 기억해 탁란한다고 친구가 귀띔해준다.

지난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22 세계수학자 대회’에서 한국인이 큰 상을 받았다. 대수 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 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39)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 겸 프린스대 교수인 그가 어릴 적 꿈이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떤 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글쓰기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고 수학 강의를 듣고 수학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그렇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어휘에 매달려야 하는 압박감이 덮칠 때의 고통은 끔찍하다. 행복했던 기억과 슬픈 기억도 끄집어내어 사물에 심취하기까지 컴퓨터 자판기를 손가락이 아프도록 두들겼다. 왜 시인이어야 하는가를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뻐꾸기의 탁란이 부러울 때 그랬었다.

류시화의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은 잠이 오지 않는 여름 밤잠을 달래주었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의 시에 담긴 언어의 울림에 자부심을 가진 시인이라서 시 속의 화자가 마치 나 자신이 되어버리는 혼란에 빠진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거대한 계곡 아래로 한 장의 장미꽃잎을 떨어뜨리고 그 메아리를 듣는 것과 같다”라고 미국 시인 돈 마르케즈는 말했다. 좋은 시는 아름다운 기억이 나온다. 아름다운 행동인 언어로 세상 밖으로 내놓는다. 좋은 관계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은 색채로 변색하여 내가 보이는 공간을 황홀하게 물들인다. 긍정적인 질서에서 편안한 화폭에 담긴 나 자신이 보일 때 그의 그물에 걸린 언어들은 곱디곱다.

바람은 머물려고 부는 게 아니라 지나가려고 분다. 갈대가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허공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소리에서 바람이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응답을 혼잣말로 지껄였다. 바람이 부는 대도 소리를 내지 않는 풍경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인 박형준은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산문집에서 시인은“아무리 놀라운 표현으로 감추려 해도 그 속에서 슬며시 흘러나오는 시인의 눈물, 시인은 저 자신의 작고 사소한 감정으로 세계를 앓으려 한 존재이다.”라며 한 줄의 독창적인 시 구절 밑에 숨겨진 내면 풍경은 세상과 동떨어질 수 없는 평범함이 엿보인다고 한다. “나는 아름다움에 허기져서 시를 써요.”라고 말하는 시인은 돈을 벌려고 시를 쓰지 않으며 그냥 좋아서 쓴다고 한다. 내 삶이 궁핍해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도전은 언젠가는 내가 나를 몰라보는 처참하고 무서운 그날이 올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를 내 곁에 모신다.

우린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슬픔과 불안을 느낀다. 서로 서로에게 빛을 나누는 별처럼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며 산다. 단련이다. 고독에 익숙해지기 위한 힘을 키워본다. 그 기억으로 아름다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 어떨까. 꿈일까? 생각과 감정이 시로 꽃피울 때 아름다운 기억은 행동으로 피어날 것이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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