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성당의 새 모습
전동성당의 새 모습
  • 안도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8.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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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문학 평론가
안도 문학 평론가

전주의 역사를 아시나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며 도읍지로 삼았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본향이 이곳 전주랍니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전주에 세워진 것도, 전라도라는 지명이 만들어진 것도, 모두 전주(全州)의 첫 글자를 딴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내력을 간직한 고장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전주하면 으레 ‘전통’ 또는 ‘한옥’이 전주의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로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요. 전주의 대표 여행지인 한옥마을에 발을 옮기면 고풍스러운 한옥보다 먼저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네 전통 건물과는 확연히 다른 그것은 무엇일까요? 눈치 채셨나요?

그것은 바로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 ‘전동성당’입니다.

전동성당이 전주를 대표하는 스폿(spot)으로 자리 잡은 건 뭐니 뭐니해도 아름다운 외관 때문이겠지요. 유럽의 그 어떤 성당과 비교해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자태가 전동성당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서울의 명동성당, 아산의 공세리성당, 횡성의 풍수원성당 등 예쁜 성당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좀 죄송한 얘기지만 전동성당과는 비교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겉모습만 봤을 때 위의 3성당과의 가장 큰 차이는 종탑에 있습니다. 명동, 공세리, 풍수원성당의 종탑들은 지붕이 뾰족 지붕인데 우리 전주 전동성당의 종탑은 둥근 반원형입니다. 그리고 3성당에는 없는 두 개의 키 작은 탑을 중앙탑 양쪽에 세운 것도 독특하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당 건립의 의미는 세계적입니다. 들불처럼 번지는 천주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최초의 박해가 ‘진산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신해박해(1791년)입니다. 그때 전주 출신 윤지충(바오로)과 그의 외종 사촌 권상연이 이곳에서 참수(斬首)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겁니다. 호남 최초의 사도로 알려진 유항검 역시 뒤 신유박해 때 이곳에서 처형됩니다.

‘전동성당’은 1891년 보드네 신부가 대지를 매입하고, 17년 뒤 1908년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성당이 완성되는데 꼬박 23년이 걸린 191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자, 이제 보드네 신부가 왜 이곳에 성당을 세웠는지 이해가 되나요? 이후 1981년 한국 최초의 순교 터에 세운 성당이 드디어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동성당이 건립된 지 130여 년이 지나니 외부 벽돌 표면에 박리 현상과 함께 풍화작용이 진행되었으며, 종탑과 좌우 첨탑 부분이 부식되는 등 손상이 심해 보수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전주시는 2020년 6월부터 종탑과 첨탑을 중심으로 벽돌 4,000여 장을 교체하고 줄눈, 창호 등 보수와 건물 표면에 있던 불순물을 제거하는 등 보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만 2년 만에 전동성당이 보수공사를 마치고 다시 개방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찾은 관광객들도 “전동성당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며 반기고 있습니다. 호남 지역 최초로 지은 서양식 건물 ‘전동성당’ 한국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아름답고 웅장한 ‘전동성당’이 우리 품으로 돌아왔음을 알립니다. 삶 속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려는 자들이여! 언제나 가슴에 울리는 종, 별이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가슴에 별이 빛나는 전동성당을 가슴에 담고 이웃들과 사랑 나누며 전주 고을에 사랑의 종소리가 은은한 향기로 울려 퍼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힘껏 살게 하시며 한순간을 살아도 마음껏 즐기게 하소서. 물결이 천천히 모래에 스며들 듯 우리 일과를 차분히 채우게 해 주소서. 조용히, 부드럽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널리 퍼져 가는 잔잔한 물결처럼 마냥 겸허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안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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