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화되는 전문체육의 입지를 지켜보며
약화되는 전문체육의 입지를 지켜보며
  • 박지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8.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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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도 체육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엘리트 체육의 요람인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뒤의 메달을 위해 정진하는 선수들과 그들이 땀 흘리는 시설을 보며 묘하게도 수험 공부에 매진하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체육인들이 공감할는지 모르겠으나 전문체육과 수험공부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히 역도, 육상, 체조 등 개인 성적이 타 선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기록 향상을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 수년 이상 몰두해야 하는 종목들은 더 그렇다. 기본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어린 시절 조성된 환경에 따라 재능이 크게 좌우된다. 그 위에 각자 세운 목표와 동기 부여가 결합되어 노력의 방향 및 양과 질에 따라 결과가 만들어진다. 경쟁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소수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구조도 둘 다 비슷하다.

  선수들이 메달권에 가기 위해 대회 전까지 비인간적인 훈련 환경이나 훈련량을 견디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개인적으로도 시험 전까지의 계획을 일·주·월별로 짜놓고 건강·친교·취미는 뒤로 미룬 채 하루 종일 말없이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가며 성적 향상에만 매진했던 경험이 있다. 수능이라는 국가 차원의 대입 시험이 끝난 직후에는 마치 전국체전의 메달리스트라도 된 것처럼 언론사와 인터뷰도 했고, 잊을 만하면 간간이 근황을 취재하는 기사도 보게 됐다. 성적을 잘 낸다는 이유로 중·고등학교와 국립대까지 10년간을 장학금만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혜택도, 국가고시 합격 후 공무원 신분으로 급여를 받으며 연수를 마치고 공익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대체했던 경험도 모두 엘리트 체육인에 대한 대우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하여 비록 수험으로 점철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전문체육을 한 선수 출신을 보면 괜한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출세를 위한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이나 성적 지상주의 엘리트 체육을 미화하려는 생각은 없다. 오히려 스스로 체험했던 과정 중 상당 부분이 불필요하거나 부조리한 고통이었기에, 나 또한 전인교육이나 창의·혁신교육이 주창하는 이상에 공감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배출하고 지역의 생활체육 저변을 확대하여 선진국형 풀뿌리 체육 생태계를 만들자는 정책 방향에도 찬성한다. 다만, 일기장에나 적을 법한 개인사와 감상을 늘어놓은 이유는 전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당위만을 강조하다 현실을 도외시하여 전문체육계나 체육인들이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기 위함이다.

  건강, 여가, 복지 차원에서 활성화되는 생활체육과 달리 경기력 향상을 추구하는 전문체육은 점점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 후원과 정부 예산이 줄고, 운동부나 실업팀이 사라지며, 인재 발굴은커녕 지역의 지도자들조차 갈 곳을 잃는 등 전문체육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모습에도, 자생력 없는 종목에 왜 세금을 쓰느냐는 시장논리로 무신경하게 방치하는 사회 분위기는 어딘가 불편하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전문체육이 주는 감동과 화합의 순기능은 경제적으로 계량하기 어려운 장점을 가진다. 공정한 규칙하에 개인 기량과 협력으로 탁월함을 추구하는 스포츠맨십은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 수천 년간 문화적으로 계승하여 온 집단 무의식이자 전통이다. 가령 모든 국민이 예술에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문예술인을 위한 예산을 줄이고 생활예술 예산으로 치환하겠다는 논리를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과도한 감정이입일지 모르겠으나 주어진 상황하에서 어려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미래를 위한 열정에 인생의 찬란한 시기를 바친 학생과 선수들이다.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품어줄 만한 여유가 부족한 사회가 못내 아쉽다.

 박지원<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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