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치
  •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 승인 2022.08.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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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80일 만에 30% 밑으로 떨어졌다. 역대 최단기 추락이다. 취임 후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돌아보면 지지율 하락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소통을 위해서 구중궁궐 청와대를 벗어나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다고 했다. 집무실 이전은 어떤 하나의 과정도 간단치 않은 것이지만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청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또 얼마나 고민한 결과인가.

용어도 생소한 ‘도어스테핑’이란 것을 호기롭게 시작했다. 언론들도 처음에는 호평일색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보던 대통령 얼굴을 날마다 마주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통은 내가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청 없이 자기의 얘기만 쏟아내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대통령의 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실수 또한 누적되면서 신뢰의 문제로 번질 것이다.

인사의 난맥상은 또 어떤가. 네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직도 공석이다. 청문회도 없이 강행한 인사는 음주운전, 논문표절, 갑질 전력에 자녀 불법 입시 컨설팅까지 불거졌음에도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냐”고 일갈해버린다.

공직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다. 말단 공무원이라도 그렇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사적 동행’, ‘사적 채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개의치 않는다.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통령실 ‘사적 채용’에 대해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더니 9급에 넣었더라.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아 미안했다”고 함으로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권 대행과 윤 대통령간에 주고받은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 문자메시지는 대통령 지지율을 30% 밑으로 끌어내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준석 대표 역시 대선 때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복어요리’에 비유한 이래 최근의 ‘양두구육(羊頭狗肉)’부터 ‘구두구육(狗頭狗肉)’에 이르기까지 가벼운 터치를 일삼는 SNS 발언들로 정치에 대한 염증을 키웠다.

단임제인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대통령은 처음이다. 그리고 대통령직은 연습이 없다. 그래서 그 직(職)을 잘 수행할만한 사람을 선거를 통해서 뽑아내고, 그 직을 잘 수행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출마도 하는 것이다. 대통령직이란 참으로 무겁고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대통령직이, 정치가 너무 가볍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키를 쥐고 있지만, 그 직과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도 신중함도 보이지 않는다. 정리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순간의 생각들이 국정이라는 엄중한 책무를 뒤흔든다. 한때 잘 사는 나라였다가 잘못된 정치로 인해 다시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필리핀 같은 나라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지금 세계는 시대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신문명이 펼쳐지고 있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느냐, 도태되느냐가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또한 스테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 양극화와 고령화, 인구 감소, 에너지·기후위기 역시 이 시대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다. 지도자의 역량과 정치권의 협치, 미래에 대한 진중한 고민과 통찰이 절실하다.

연일 시장의 소란함만 난무하고 있는 정치권에서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의 원대한 비전과 철학, 정치의 품격이 아쉽다.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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