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독립운동가 - 강제하, 이웅해, 백남준, 최명수 선생
8월의 독립운동가 - 강제하, 이웅해, 백남준, 최명수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2.08.0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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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의부 훈련 광경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강제하·이웅해·백남준·최명수 선생을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이웅해·백남준·강제하·최명수 등 네 분은 남만주 통합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통합 독립운동체인 통의부를 이끌어 간 주도적 인물들이다.  

  이웅해는 통의부를 성립시키기 위한 회의인 남만한족통일회의에 22명의 동지와 함께 대한독립군 대표로 참가했다. 통의부가 탄생되고 난 후 민사부장에 선임되었다. 

대한통의부 발족 보도 기사(1923.3.10)

  통의부는 성립 후 자치와 무장활동을 충실히 수행하며 남만주지역 한국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웅해는 민사부장에 이어 재무부장을 맡으며 통의부를 이끌었으며,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백남준은 서간도를 포함한 남만주에서 활동한 대표적 독립군 지휘관 중 한명이다.  

  1920년 초 서간도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직속의 광복군이 성립되었고 무장활동 별동대인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다. 백남준은 오동진이 총영장이 되어 이끈 부대의 군사부장 겸 참모부장에 선임되어 특수작전을 수행했다.  

대한통의부 발행 어음(1원)

  남만한족통일회의 개최 시 광복군총영의 대표로 참가하여 통의부를 성립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으나 직책은 맡지 않다가 1923년부터 중앙행정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정의부 성립 시까지 이 직책으로 통의부를 이끌어간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통의부에서 권업부장으로 활동한 강제하는 정의부에 이어 조선혁명당에 이르기까지 남만주에서 독립군 지도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통의부 성립 초기에는 함께하지 못하였으나 곧 가담해 독립군의 모태가 되는 한인사회와 독립군의 생계를 책임지는 권업부장을 맡았다.  

  통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서로군정서 등 7개 단체와 통합해 정의부를 성립시켰다. 정의부에서 강제하는 중앙행정위원에 선임되고, 이후 정의부에서 대표회 위원,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며 단체의 최고위 간부로서 역할을 다했다.  

  강제하는 조선혁명당의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이후 남만주의 한국 독립운동을 이끌어 갔다.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최명수 선생

  최명수는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곧바로 서간도로 망명했다. 이후 국내에서 건너온 신민회 인사들과 서간도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적극 참여했다.  

  1910년을 전후해 서간도로 망명한 민족운동자들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독립운동기지 개척을 위해 경학사를 세웠고 이후 단명을 부민단으로 바꿨는데 최명수는 단총에 선임되어 부민단의 실무를 이끌었다. 

  통의부에서 최명수는 검무국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통의부에 이은 남만주의 통합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를 성립시키기 위한 전만통일회에 길림주민회 대표로 참가했다.  

  정의부가 성립되고 초기 조직을 정비할 시기 자치분과위원을 맡아 활동했고 조직이 완비되고 난 후에는 검리장에 임명되었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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