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문화한류와 허준이 교육방식
세계적 문화한류와 허준이 교육방식
  • 이민호 전북대 교수
  • 승인 2022.07.1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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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홀히 여겼던 문화예술과 달리 과학기술은 국가가 상당히 역점을 기울여온 주요 분야이다. 일찍부터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과학기술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성취를 앞서서 거둔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기대치 않은 문화예술 분야였다. 현재 K-팝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문화한류가 세계적으로 거세다. 그에 반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노벨상 수상을 그토록 염원했지만 결과가 뒤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놀라운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것이다. 필즈상은 세계수학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40대 미만의 젊은 최고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국제적 상이다. 필즈상 역사 87년만에 첫 한국계 수상자가 배출된 국민적 경사가 일어났다. 그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나 초중고부터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한국에서 교육받았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수학에 흥미를 가졌고 연구방법도 익힌 사람이다.

허준이 교수는 특이하게도 고등학교 때 시를 쓰려고 중퇴까지 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하긴 했지만 그의 합격은 놀랍게 여겨질 정도였다. 시험 위주의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 다양한 책들을 읽는 것을 즐겨했다. 그러다가 대학 3학년 때는 전공 수업을 ?아가지 못해 우울증에 걸리며 모든 과목에서 낙제했다. 과학자로서는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과학기자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수학은 4학년 때 히로나카 헤이스케 서울대 초빙교수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대학을 4년이 아니라 6년 동안 다녀야 했다.늦깎이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남다른 과학 성취를 이루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문화한류와 맞닿아 있다.

첫째는 견고하게 제도화되어 있는 학교 및 입시교육에 덜 의존하고 물리학, 문학, 수학, 게임 등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둘째는 새로운 길을 안내할 학문적 멘토를 만나 남다른 인생항로를 세울 수 있었다. 셋째는 부담감을 덜어내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고자 했다. 넷째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 및 선배들과 함께 하는 방식이 그를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게 해주었다. 그 결과 과학과 인문을 겸비한 그는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수학 분야인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융합하여 발군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에서는 학교교육에 얽매이지 않을수록 창조적 성과가 나타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의 대학교육을 성찰하고 창의적 교육방안을 보다 진지하게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점점 심화되고 있는 교육위기를 상호경쟁을 넘어선 사회적 공감을 통해 새로운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유연한 교과과정, 개인 맞춤형 교육, 전공을 넘나드는 교육, 멘토와의 대화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이것을 허준이 교육프로그램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은 날에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한탄바이러스 발견자 이호왕 박사가 세상을 떴다. 하나의 샛별이 뜨고 그간 세상을 비추던 오래된 별이 진 순간이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더 멀리 보는 지혜를 행운처럼 얻기도 한다. 한국의 대학교육도 새로운 안목에서 학생들을 거인으로 키워내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이민호<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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