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먼트 어토니
거버먼트 어토니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7.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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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존경하는 민법 교수님이 있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이라 그런지 말투도 독일인 같이 딱딱했다. 수업 진행 방식도 공격적(?)이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계속해서 질문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강의는 늘 만원이었다. 그는 민법의 어지러운 조문들을 강의하면서 딱 한 번 이런 말을 했다. “법을 다루는 사람, 법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쉽게 건조해진다. 앞으로 법조인이 되면 틈날 때마다 시(詩)를 읽어라. 법만 아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예상외였다. 계약법상 누가 잘못했는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철두철미하게 밝히는 방법을 듣다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변호사로 일한 지 이제 10년차가 다가왔지만 학창시절 교수의 말처럼 시를 많이 읽지 못했다. 문학을 좋아했고 한때는 시인이 꿈이었음에도 의미 없는 감상에 젖었다가 치열한 쟁투의 장으로 돌아오는 일이 어색했기에 시집을 다시 꺼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에 눈이 가곤 한다.

사법부가 법해석과 판결을 함에 있어 법의 문구에만 한정되지 않고 적극적인 법형성 내지는 법창조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법적극주의’란 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사건의 발생 이후 사건에 개입하지 않되 사건 당시의 법률로 당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가진다. 그래서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에 비해 ‘창조’, ‘형성’과 친하지 못하다. 사법적극주의에 매몰되면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 오히려 실질적 정의를 해칠 수 있다. 그래서 사법부, 널리 법조인들은 보수적이고 규칙을 중시하며 법적 안정성에 가치를 둔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부 관료들에 대한 인사가 검찰 출신으로 편중되었다는 비판에 ‘거버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란 말을 쓰면서 반박했다. 정권이 출범하면 아무래도 대통령과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을 중용하기 마련이기에 생소한 개념을 끌어다 쓰면서까지 적극 반박한 취지는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중앙 연방정부에 비해 주정부의 독립성이 강조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거버먼트 어토니의 개념이 사뭇 다르다. 연방정부나 주의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받는 연방 혹은 주 정부 검사를 ‘어토니(attorney·대리인)’라고 부르긴 하지만 수사와 기소에 무게를 두는 우리나라 검사와 달리 미국의 검사는 법무부 공무원에 가깝다고 한다. 어찌됐든 대통령이 다양한 분야에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등용하지 않고 법률가 출신, 특히 검찰 출신들 위주로 인사를 한다는 비판에 대한 적확한 답변은 아닌 듯싶다.

혹자는 군인시대에는 육사 출신, 민주화시대에는 운동권 출신이 주류가 되었지만 이젠 법조계 출신들이 입법과 행정부에 적극 참여하여 주류가 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지난 6월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인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광역단체장 3명, 기초단체장 5명, 지방의회 의원 12명,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4명 등 28명이다. 지난 대선에서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 법조인 출신이고 현 대통령도 검찰 출신이니 바야흐로 법조인 전성시대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사회발전을 담보한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기업을 경영한 사업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과학자 출신 정치인을 보고 싶다. 시인 출신 정치인은 아니더라도,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가끔은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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