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을 달리하면 소홀했던 곳이 보인다
측정을 달리하면 소홀했던 곳이 보인다
  • 박지원 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7.0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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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삼십몇 년을 살면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 이번 주말에도 아내가 대청소를 하면서 ‘주방과 화장실 청소는 내가 맡을 터이니, 거실과 방 청소는 당신이 맡으라’기에 마지못해 청소기와 걸레를 들고 나섰다. 바닥을 보며 눈에 띄는 먼지를 하나 둘 없애던 중 아내로부터 한 소리 들었다. ‘위에 쌓인 먼지를 먼저 털고 나서 바닥을 해야지, 바닥부터 시작하면 어떡하느냐’는 주문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기도 하고, ‘내가 먼지를 얼마나 많이 없애는지 보여주마’하는 오기도 생겨서 집안 어디에 먼지가 많은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과연 장롱과 에어컨 위, 문틀과 책장 위는 걸레로 살짝 훔치기만 해도 여러 해묵은 먼지와 찌든 때가 묻어나왔다. 아마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심지어 아파트가 지어진 이후로 한 번도 청소되지 않은 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루어진 곳도 있으리라. 아내에게 잘 보이고자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청소를 하는 것이었기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를 힘들여 닦으면서도 보람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스운 생각도 떠올랐다. 자발적이 아니라 남이 시켜 일을 할 때도 과연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청소를 할까? 누구나 청소를 하고 나면 집이 얼마나 깨끗해졌는지 보여주고 싶어진다. 그러다보면 눈에 잘 띄는 공간에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은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다. 먼지가 쌓여 있더라도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마음도 덜 불편하고, 어찌어찌 살아가는 데 큰 문제도 없기 때문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청소라면 더더구나 그 사람의 눈길이 갈 만한 곳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를 바꾸려면 청소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가령 청소를 얼마나 잘했는지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곳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지가 아니라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걸레로 닦아낸 먼지의 양으로 성과를 측정하게 되면 사람들은 알아서 소파 밑이나 찬장 위 같은 곳을 구석구석 훑을 것이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알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청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지나친 기대다. 요는 ‘측정’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여 평가에 반영시킬 것인가를 면밀하게 정함으로써 인간과 사회를 더 나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집안 청소가 아니라 국가 예산과 정책에도 마찬가지로 ‘측정’의 논리가 적용된다. 과거에는 경제성장률과 GDP로 국가경제 발전의 성과를 측정하였다면, 이제는 UN이 제시하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각종 지표를 반영하여 국제적인 선진국 기준에 발맞추어갈 수 있다. 교육정책도 입시 기준을 변화시키면 수백만 학생들이 다른 공부를 하게 되고, 체육정책도 메달의 개수를 측정할 것인지 아니면 노령인구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측정할 것인지에 따라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예산 배분이 달라질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취임식이 한창이다. 도민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투표에 반영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당선인이 예산을 편성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데에도, 재선을 하거나 낙선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측정’의 논리가 작용한다. 시민들이 당장 눈에 띄는 선심성 공약에 집중한다면 그러한 표심이 예산에 반영되고, 친소관계에 따라 표를 던진다면 재선에 유리한 인사로 조직을 관리하는 데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당선인들이 묵은 때를 벗겨내고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곳을 돌보기를 원한다면 시민들 또한 제대로 된 측정과 평가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박지원<법무법인 다지원 대표변호사>  

 약력 ▲전북바둑협회 회장 ▲전라북도체육회 이사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당 법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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