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강을 건너는 빈 배
세상의 강을 건너는 빈 배
  •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 승인 2022.06.22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차를 타고 다니면서 흔히 겪는 일이다. 앞차와 거리를 바짝 좁히지 말고 조금 거리를 두고 운전을 하라고 당부한다. 바쁘더라도 안전거리를 지켜야 사고가 나지 않을 것 아니냐고 운전하는 직원에게 윽박지르다시피 타이른다.

한 달이면 서너 번 서울을 왕래하는데 오전 일찍 출발하는 경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열차 출발시간에 맞춰 30여 분 전 출발했는데도 신호등이 여기저기서 가로막고 지연시키면 열차 출발시간이 임박해진다. 차들은 줄을 서서 계속 밀려들고…;. 이럴 때면 직원이 거리를 두면서 운전하면 다른 차들이 노란불도 켜지 않고 머리를 들이밀고 끼어든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바짝 붙지 않고 다른 차가 끼어들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평소 때는 제법 준법 어쩌고 하면서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다급해지면 태도를 백팔십도 바뀌는 마음을 느끼고 얼굴만 붉히고 만다.

며칠 전에는 끼어드는 차가 머리를 들이밀면서 약간 부딪쳤다. 잘못을 하고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달려드는 사람과 언쟁을 벌였다.

열차시간 때문에 더 이상 시비를 가릴 시간이 없어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하면서 우리 잘못은 없으나 끼어들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니까 머리를 들이밀었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올 때 아주 더 양보를 했어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신호등도 켜지 않은 채 무례하게 자기 이익만을 위한 행동을 그대로 묵과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어쨌든 그 친구가 미안한 얼굴이라도 했더라면 큰소리 없이 조용히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고 우리도 좀 더 양보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상념에 잠기면서 옛날 중국 장자의 나룻배 얘기를 생각한다.

장자는 강에서 홀로 나룻배를 타고 명상에 잠기곤 했다. 그 날도 장자는 여느 때처럼 눈을 감고 배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배가 그의 배에 부딪쳐 왔다.

화가 치민 장자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무례한 사람이군. 내가 눈을 감고 명상중인데 어찌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장자는 화난 표정으로 눈을 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배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배였다. 그저 강물을 타고 떠내려 온 빈 배였던 것이다. 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후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상처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텅 빈 공간이 되라.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라.”

모든 싸움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장자의 말처럼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으면 맞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신수양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