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자존심
돈과 자존심
  • 신원식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 승인 2022.06.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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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전북 정무부지사
신원식 전북 정무부지사

 필자가 2004년경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H사의 유럽 법인장을 맡아 오토바이 헬멧을 판매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스트라스부르크는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EU의회 본부가 있는 곳인데, 워낙 토양이 비옥하고 자연이 아름다워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7번씩이나 주인을 바꾸어가며 점령했던 지역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알자스 지방에 있는 도시이다.

 그곳에는 당시에 한국 교민이 100여 명 거주하고 있었는데 타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주 일요일에 한인교회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점심도 같이 먹으며 타향에서의 회포도 풀고 친교를 가졌다. 이 교회의 당시 목사님은 장애인이셨는데 하루는 필자가 저녁식사를 모신 자리에서 “신전무님, 돈이란 어떻게 버는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하셨다. 필자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잠깐 생각 끝에 “제 생각엔 자존심과 바꾸는 것입니다.”라고 답변드렸다.

 공직에 있을 때는 주로 기업들의 요청을 파악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갑’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잘 인식하지 못했는데, 기업에 와서 ‘을’의 입장이 되어 영업을 하다보니 내가 구매자의 요구와 취향을 맞춰주어야지 상대가 내 회사의 물건을 사주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철저히 내 회사의 입장이나 나의 자존심을 배제해야되는 것이다.

 어느날 자동차 트렁크에 헬멧을 잔뜩 싣고 파리 근교의 오토바이 상점에 세일즈를 하러 갔는데 상점 주인이 오토바이나 의류 사러온 고객들 상대로 바빠 필자에게는 눈길 한 번 안주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필자는 영업선배에게 배운대로 구석에 진열되어 있는 오토바이 헬멧 50여개를 클리너로 깨끗이 닦으며 주인을 기다렸다. 약 두시간 후 고객이 모두 나간 뒤 상점 주인이 낯선 동양인에게 찾아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때 필자는 거치대에 헬멧이 비어있는 두 군데 공간을 가리키면서 “이곳에 H사 헬멧 두 개만 걸어놓고 가겠다. 지금 돈은 안받을테니 2개월 후 상점에 다시 들를 때 팔렸으면 그때 수금해 가겠다.”고 제안했다. 상점 주인은 먼지가 앉아있던 헬멧도 반짝반짝 닦여 있고 수금도 판매조건부로 한다니 자기 장사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해 주었다.

 국내도 아닌 낯설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해외 세일즈 현장에서 한국의 영업맨들은 이렇게 자존심을 철저히 상해가면서 달러를 벌어온다. 그야말로 매일매일 눈물에 젖은 빵을 먹으며 견디는 것이다. ‘정직한’ 돈은 나의 자존심과 맞바꿔가며 번다는 사실을 현장을 통해 깊이 체험했기에 목사님의 “돈은 어떻게 버느냐?”는 어려운 질문에 이렇게도 간단한 표현으로 답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낙후된 경제를 살리고 수도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자체, 정치권, 산업계, 도민 등 여러분들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그때의 기업생활을 떠올리며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자존심을 버리고 돈을 가져다주는 갑(甲)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주는 을(乙)이 되자는 각오로 임해야할 것을 다짐해 본다. 기업유치를 위해서는 공장용지의 분양가가 낮아야하고 물류교통이 편리해야하며 사업활동에 대한 법령상 규제완화와 자금지원, 근무직원들의 정주여건과 자녀교육, 문화생활 등 배려해 주어야 할 요소들이 굉장히 많다. 갑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여 하나하나 지역인들이 협력하여 세심하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지역발전의 로드맵을 짜서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원식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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