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생각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생각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6.1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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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마음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가 온종일 우울하게 만든다. 마음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기도 한다. 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가를 생각한다. 생각은 마음을 이끌고 다닌다. 어딘가를 향해서 움직인다.

그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앨범을 제일 먼저 꺼냈다. 언제 버릴 것인가? 학창 시절의 앨범을 펼치고 연락을 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담임 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임 선생님이 100세를 앞두고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마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받기 위하여 현재 나는 열심히 사는지도 모른다. 내가 칭찬받을 일이 생기면 잊지 않고 카톡에 문자를 올리고 꽃바구니를 보낸다.

가족처럼 축하해주고 기뻐하신다.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선생님께 꼭 소식을 전한다. 선생님의 모습은 고교 시절처럼 멋지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나의 느릿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선생님이다. “코로나 예방 잘하고, 규칙적인 운동하고, 느슨해진 코로나 방심하지 말고.” 선생님이 올린 카톡방의 글이다.

올해 들어서 이상한 마음의 변화가 일었다.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 소외된 자에게 관심을 두기로 했다. 홀로 사는 사람, 병마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하루에 한 번 위로의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꽃을 좋아하기보다는 잡초의 이름을 불러 준다. 노루귀꽃처럼 고귀한 야생화가 아니라 사람이 드나드는 길목 언덕이나 길모퉁이에서 보이는 흔한 꽃에 마음이 흔들린다. 시간이 쌓여서 생긴 너그러운 생의 빛이리라.

그들도 질서가 있어서 작년에 핀 순서대로 꽃핀다. 담벼락 틈새에 뿌리를 박고 핀 노란 머슴둘레꽃, 소리쟁이 풀은 벌써 벌레가 갉아먹어 무늬를 만들어 간다. 애기똥풀꽃이 시들어지는 요즘엔 토끼풀, 노란 꽃창포, 제비꽃, 자주괴불주머니꽃이 아무렇게나 모여서 피고 있다. 하지만 가끔 잊히지 않은 야생화가 떠오른다. 깽깽이풀 보라색 꽃이다. 잎 모양은 둥글고 잎자루가 잎의 밑 부분이 아닌 중간에 달려 있어 아기 연잎 같았다. 신기한 것은 연꽃잎처럼 물방울이 떨어지면 흡수되지 않고 또르르 굴러 떨어질 때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그때 이후로는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황혼』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며느리는 왜 시어머니를 ‘노인네’라고 하는지 궁금하였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의 삶에서 나도 그 틈새로 기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무게를 달아 보았다. 늙은 여자임이 틀림없겠다. 왜냐하면 며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살지 않지만 젊은 여자의 마음속으로 내가 빨려들어 가기 때문이다.

『황혼』의 늙은 여자가 나에게 귀띔해주는 말이 들리곤 했다. 한동안 그 말소리를 지워버리려고 음악을 듣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도 떨어보았다.

좀처럼 젊은 여자의 당돌함을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더 마음이 아픈 건 아들의 태도였다. 아들의 발걸음 소리가 문 앞에서 들리는 날을 기다리는 늙은 여자, 어머니의 슬프고 외로운 하루가 불쌍했다. 그 바이러스가 전염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신나게 창공을 날던 새가 느닷없이 ‘글라스 킬’을 당하지 않도록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늘을 나는 새와 사람을 생각한다. 새의 눈은 왜 측면에 붙어 있도록 진화했을까를 떠올리면서 고층빌딩 투명한 유리 벽에 돌진하다가 죽는 새의 운명을 생각한다. 안타깝다. 50년 동안 새 개체 수는 40% 이상 사라졌다고 한다. 환경부와 국립 생태원이 2018년에 발표한 결과다. 유리창에 목숨을 앗긴 새가 하루 평균 2만 마리 죽는다.

동트기 전 건지산 숲에서 전주천으로 가는 새의 길은 내가 사는 아파트 앞을 지나간다. 그들의 하늘길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으나 분명 그들만의 길이 있다.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생각들은 과거를 만드는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때도 변화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시간은 변화의 속도였다. 방금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공존하지 않아도 과거를 만들며 흐른다. 빨리 달리는 동물은 빨리 죽는다. 그래서 천천히 글밭 농사를 지으며 시간을 아끼며 산다. 감정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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