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구파 백정기와 3의사(三義士)를 말하다
백범 김구, 구파 백정기와 3의사(三義士)를 말하다
  •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 승인 2022.06.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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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일제가 패망한 이듬해 1946년 7월 6일,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일본에서 모셔온 독립운동가 세 분의 유해가 국민장으로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됩니다. 이 봉환 행사를 주도한 분은 바로 백범 김구(1876~1949)입니다. 백범이 독립운동 3의사(三義士)로 지칭한 이 세 분은 일본 동경 우라와 묘지에 있던 <이봉창>의사, 이시가와현 일본 육군묘지 아래 도로에 매장되어 있던 <윤봉길>의사, 그리고 이시가와현 감옥 묘지에 있던 <백정기>의사입니다.

부끄럽게도 우리에겐 조금은 낯선 이름, <백정기>의사가 있습니다.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와 함께 백범 김구가 3의사로서 그토록 애국충절을 높이 샀던 구파(鷗波) 백정기(白貞基)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구파 백정기는 1896년 부안에서 태어나, 1908년 결혼하면서 처가가 있는 정읍에 옵니다. 1934년 39세의 나이로 일본 형무소에서 순국하기까지 그의 삶을 살피다 보면 역사적인 세 인물, 즉 간재 전우, 우당 이회영, 백범 김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15살이 되는 1910년 정읍 흑암동 <영주정사>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 영주정사는 1903년 세워지면서부터 절개와 학식으로 유명한 간재 전우(1841~1922)가 6년 정도 가르치던 곳입니다.

1921년 일본에 건너가 노동현장과 아나키즘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2년 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구파 백정기의 삶은 <우당 이회영(1867~1932)>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1924년에는 북경에서 우당 이회영 등과 <재중국 무정부주의자 연맹>을 결성하기도 하고, 1926년에는 북경 근처 천진에 있던 우당의 거처에서 1년 남짓 한 방을 같이 쓰면서 항일 활동을 합니다.

36세가 되는 1931년에는 중국내 여러 국가 출신 아나키스트들의 모임인 <항일구국연맹>이 만들어지고, 비밀 결사인 <흑색공포단>이 조직됩니다. 흑색공포단은 구파 백정기가 단장을 맡아 일제의 주요시설 폭파, 요인암살, 친일분자 숙청 등을 추진하게 됩니다.

1919년 약산 김원봉(1898~1958)이 조직한 <의열단> 활동이 나석주의 동약척식회사 폭탄 투척과 같이 주로 국내에서 이뤄진데 반해, <흑색공포단>은 주로 중국내에서 이뤄집니다.

1933년 3월, 상해의 육삼정이란 고급 식당에서 주중 일본공사와 일본에 매수된 중국 군벌간 비밀회동이 있다는 첩보를 얻고, 이들을 몰살시키고자 의거를 일으켰는데, 사전 정보 누설로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이 <육삼정 의거>입니다. 이때 구파 백정기의 손에 들려있던 도시락 폭탄은 백범 김구로부터 받은 것으로, 앞서 1932년 4월 상해 홍코우공원에서 윤봉길의사가 던진 것과 똑같은 폭탄이었습니다.

구파 백정기의사의 다양한 항일투쟁은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의거라는 폄하도 있고,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한 오해도 있겠습니다. 또 정치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역사인식의 왜곡, 그리고 청산해야 할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로도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이니 정읍시와 전라북도의 중단없는 노력이 더 요구되기도 합니다.

정읍시 영원면에는 <백정기의사기념관>이 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한 줄기를 이해하는 가족여행으로 제격입니다. 또 이번 기말고사를 마치고 학교 현장학습으로도 강력히 추천드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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