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명필, 창암 이삼만
조선의 명필, 창암 이삼만
  • 김동수 시인
  • 승인 2022.06.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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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시인 / 전라정신연구원장<br>
김동수 시인 / 전라정신연구원장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조선 후기의 정조∼순조 때의 서예가이다. 그는 전북 정읍시 부전동 부무실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늦고, 벗의 사귐이 늦고, 결혼까지 늦어서 스스로 ‘삼만(三晩)’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해 약초를 캐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어렸을 때 왕희지의 법첩을 중심으로 글씨를 연마하였는데,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로 칡뿌리와 대나무 앵무새 털 등으로 붓을 만들고, 종이를 구하기 어려우니 옷감을 이용해 글씨를 쓰고, 다시 빨아서 글씨를 썼는데 하루에 천 자씩을 쓰고 잠을 잘 정도였다.

벼루 3개가 닳으니 해서와 행서, 초서에 능했고, 부단한 노력과 정진으로 창암체라는 물처럼 흐르는 유수체(流水體)를 남겼다. 이삼만은 50세 전후에 전주교동으로 옮겨 후학을 양성하고, 서예연구에 전념했다. 만년에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 공기 마을에 살면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평생을 청빈하게 살다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추사 김정희, 평양의 눌인 조광진과 함께 조선 후기 삼필이었다.

창암이 19세 때 약초를 캐러 산에 올라갔던 아버지가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뱀을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잡아서 껍질을 벗기어 통째로 씹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삼만 앞에서는 독사들이 풀이 죽어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한다.

1840년 가을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전주를 지나면서 중국에까지 알려진 창암의 글씨를 한번 보고 싶어 추사를 만났다. 예를 갖춰 하필을 청하자 사양했으나 간곡히 청하자 두보의 오언절구를 일필휘지했다. 추사는 이를 보고 “과연 소문대로 이십니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9년 후 추사가 해배되어 서울로 가는 길에 전주에 들렀으나 창암은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슬픔에 잠긴 추사는 묘소를 참배하고 ‘명필창암완산이공삼만지묘(名筆蒼巖完山李公三晩之墓)’라는 묘비를 남겨놓고 떠났다고 한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964(아랫 잣골) 선영에 창암의 묘비가 있다.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산광수색(山光水色)’이라는 작품은 뱀의 모양을 독특하면서도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표현,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산(山)’ 자는 뱀이 똬리를 틀고 경계하는 모습과 흡사하고, ‘광(光)’ 자는 개구리와 벌레를 낚아채는 듯한 현상이 뚜렷하다. ‘수(水)’ 자는 살모사가 목을 추켜들고 갈비뼈를 빳빳하게 펼친 채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는 형상인가 하면 ‘색(色)’ 자는 똬리를 틀고 승천하는 이무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글귀는 산은 높고 물은 맑다는 뜻으로, 그의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는 ‘구름처럼 흘러가고 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런 글씨체’의 조형미를 너무 가장 잘 보여주는 걸작이다. 뱀이 4마리가 꿈틀거리는 그의 글씨 ‘산광수색’이다.

해남 대흥사(가허루), 구례 천은사(보제루), 전주 송광사(명부전), 곡성 태안사(배알문), 선암사 만세루(설선당) 등 도처에 많은 그의 편액이 남아 있다.

창암이 한여름 한 더위를 피하려고 한벽루에 올랐다. 부채 장수가 부채 보따리를 부려놓고 다락의 한켠에 자고 있었다. 창암은 불현듯 필흥이 일어나 모든 부채에다 해?행?초서로 일필휘지 문자, 시구를 써넣었다. 한참 후 깨어보니 합죽선이란 합죽선에는 모두가 먹칠이 되어있었다. 부채 장수는 이만저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이 부채가 팔리지 않으면 저기 보이는 저 집이 내 집이니, 그리로 가지고 오시오. 창암은 이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합죽선은 몇 달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다. 하루는 한 중국인이 길을 가다 길가에 펼쳐놓은 합죽선의 글씨를 보고는 2, 3배 값을 지불하고 모조리 사갔다. 창암의 글씨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물론 국내에도 창암의 글씨가 널리 알려져 글씨를 배우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낭만도사가 쓴 ‘뱀도 풀 죽게 한 서예가 이삼만’을 참조하여 이글을 널리 알리고자 본란에 소개한다.

김동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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