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자세
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자세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2.06.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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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산사에 가면 법당이나 승방 댓돌 위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조고각하는 불교 용어로 “발밑을 살펴보라”는 뜻이다. “항상 자신을 비추어 반성하되(照顧), 자기 발밑부터(脚下) 살펴보아라. 지금 네가 서있는 곳이 어떠한지, 신발은 잘 벗어두었는지 돌아온 발자취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밤에 길을 가다가 가로등이 꺼지거나 바람에 등불이 꺼지면 주위는 어둠 속에 잠긴다. 어둠 속에서는 멀리 볼 수 없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걷더라도 자칫 발을 헛디뎌 넘어지게 되면 다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자신의 발밑을 살펴서 걷는 것이다. 밤길을 걷다 주위의 소리나 희미한 불빛에 고개를 들고 걸었다간 어려운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마이클 레빈은 자신의 저서 <깨진 유리창법칙(Broken windows, Broken business)>에서 ‘작은 범죄를 막으면 큰 범죄도 막을 수 있다’는 범죄학 이론을 비즈니스에 접목하였다. 여기서 ‘깨진 유리창’은 사소한 실수를 의미한다. 사소한 실수를 고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깨진 유리창인지 찾아내 다른 경쟁사와 다른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차이가 결국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사소한 차이가 큰 결과로 이어진다는 이치는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비행기가 같은 활주로에서 같은 방향의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비행기가 공항에서 이륙할 때 똑같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비행기가 1도의 각도를 틀어서 날아가면 한 비행기는 뉴욕으로 날아가고, 다른 비행기는 브라질 상파울로로 가게 된다. 처음에는 1도의 차이가 나지만 나중에는 아주 멀어지게 된다. 호리천리(毫釐千里)도 같은 의미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차이 같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가 됨을 이르는 말이다.

세계적인 뇌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이 슈테판 클라인과 나눈 대담이 실린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책 속에서, 그는 “인간의 의식에서 개인적인 것이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낮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의 98% 이상은 우리가 문화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입니다. 결국 내 의식의 2%만이 나의 것들입니다.”라고 말한다. 뇌에 담겨 있는 인간의식 대부분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2%의 의식이 개인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세상에는 없어도 되는 2%란 없다. 2%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간이 존재하게 된다.

또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 가까이 있는 소중한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을수록 그 존재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평소 자신의 발밑을 살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의 눈길은 대개 앞서간 사람의 뒷모습을 보거나 높은 빌딩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앞이나 위를 바라보며 살아왔기에 자신의 발밑을 보기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이 이루어놓은 것을 자신과 비교한다. 그 순간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워진다. 자기 결함은 생각지 않고 애꿎은 사람이나 조건만 탓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실험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다”라고 말한다.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사람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자인 것이다. 정신병자가 되지 않으려면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자(孔子)가 제자 안회(?回)를 좋아한 것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1. 지방선거가 마무리되었다. 당선자들이 유권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작은 소리도 크게 듣고 실천하는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

조고각하(照顧脚下)는 자신의 발아래를 살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겸손과 낮아짐을 상징한다. 유권자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가 가지만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은 작고 사소한 일에 흐트러짐이 없도록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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