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신생아 모자 뜨기와 덤
아프리카 신생아 모자 뜨기와 덤
  • 박은숙 원광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
  • 승인 2022.06.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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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숙 원광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
박은숙 원광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

대학에서 맡은 업무의 강도가 높아지는 만큼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고민하던 차에 도덕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프로젝트인 모자 뜨기에 참여하기로 했다. 과대표는 도덕교육원에서 형형색색의 털실과 뜨개질용 대바늘을 받아왔다. 지도학생 중 여러 명이 모자 뜨기에 동참했다. 학생들을 만날 시간을 확보하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덤이 찾아왔다. 지금도 내 핸드폰에는 그 학생들 이름 뒤에‘모자’라고 적혀있으며, 그들의 이름에는 ‘모자’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첫 모임에서 학생들은 ‘아프리카는 더운 나라인데 왜 신생아에게 털실모자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답했다. 아프리카도 일교차가 심하므로 아침 저녁으로 신생아에게 털실모자를 씌워주면 체온을 2도까지 높일 수 있으며, 적정 체온을 유지하면 면역력이 강화되어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털실모자가 방한을 넘어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뜨개질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남학생도 참여했는데, 남학생, 여학생 모두 처음에는 터덕였지만 바로 뜨개질에 익숙해졌다. 학생들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대단했다. 학생들은 내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나는 중학교 가정 시간에 뜨개질을 배웠다. 한 학생은 빨리 교사가 되어 자신의 학생들과 모자 뜨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은 내가 그들과 모자 뜨기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금세 알아차린 것 같았다. 현재 그 학생 중 일부는 임용고사에 합격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뜨개질은 반복되는 작업이므로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생들의 관심사, 대학 생활, 취업 준비 등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저절로 찾아왔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는데, 서로 만나는 날을 기다렸다. 모자 뜨기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프로젝트뿐 아니라, 학생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프로젝트가 되어 있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므로 주말에 각자 모자 뜨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모자 하나를 완성하려면 4시간 반이 소요되었는데, 이는 쉴 새 없이 뜨개질할 때 걸리는 최소 시간이었다. 모자 5개를 뜨려면 22시간 반이 필요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22시간을 확보하려면 대단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소파에 반듯이 앉아서 모자 뜨기를 시작했는데, 몸이 미끄러져 내려가더라도 대바늘을 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몰입의 즐거움은 또 하나의 덤이었다. 내가 만든 모자가 아프리카 신생아에게 너무 작은 것은 아닌지, 너무 커서 벗겨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물품이 귀한 나라이므로 어떤 신생아에게나 맞는 모자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의 이마 부분에 고무줄을 넣든지, 턱에 묶을 수 있는 끈을 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자녀의 머리 둘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아프리카 신생아의 머리 둘레에 대해 관심을 두다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뜨개질은 세상 모든 일과 통하는 것 같았다. 조그마한 털실모자가 나의 생각을 확장해 주었다. 첫째, 모자 뜨기 첫 단계는 코를 뜨는 것인데, 신생아의 머리둘레에 맞아야 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첫 단추가 잘 끼워져야 하는 것과 같았다. 둘째, 한코한코의 크기가 일정해야 모자 모양이 질서정연하게 완성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코의 크기가 일정하나, 마음이 조금이라도 산란하면 코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일할 때에도 단계마다 정성을 들여야 완성도가 높은 것과 같았다. 셋째, 장시간 뜨개질하면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공들여 털실방울을 달면 모자는 더 귀여워졌다. 일할 때에도 마무리까지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넷째, 처음에는 단색 모자를 만들었으나, 남은 실로 두 가지 색 또는 여러 색을 조합하게 되었다. 단색 모자가 인기가 있을지, 두 가지 색 모자가 인기가 있을지, 아니면 여러 색 모자가 인기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두 가지 색이라면 비슷한 색을 번갈아 넣은 모자가 인기가 있을지, 빨강색과 녹색처럼 보색을 대비시켜 만든 모자가 인기가 있을지 아프리카 젊은 엄마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졌다. 일할 때에는 수요자의 요구나 취향에 맞춰야 하는 것과 같았다.

수년이 지난 후 나는 학생들과 해외교육봉사를 하러 아프리카에 간 적이 있다. 8월인데도 숙소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졌다. 적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호텔, 가정집 모두 난방 시설 자체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프리카 신생아에게 털실모자는 체온 조절에 유용할 것임이 분명했다.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 짬을 내어 털실모자를 뜨면서 아프리카 신생아를 떠올려보는 것도 바캉스를 즐기는 한 방법일 것이다. 뜨개질하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며 공감대가 형성되고,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을 느끼는 것은 덤으로 얻는 보너스일 것이다.

박은숙<원광대학교 대외협력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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