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당제
할당제
  •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 승인 2022.05.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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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br>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품격 높은 대한민국이 되는 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차치하고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 ‘다름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다름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내놓은 제도가 적극적 우대조치(Affirtive Action)라고 불리는 할당제다. 특히 여성들의 참여가 가장 저조하고 장벽이 높은 정치 분야에 있어서의 할당제는 여성계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다. 이것은 기득권자들만을 위한 정치가 아닌 약자와 소수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법과 제도의 개선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젠더 갈등은 심화되었고 할당제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제 집권당이 된 국민의힘 당대표와 대통령 후보는 할당제와 같은 인위적 평등 조치에 대해 거부하고 철저한 능력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자릿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여성의 정치참여율이 지금처럼 두자릿수에 이르게 된 데는 할당제의 기여가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비례대표 50% 할당제와 홀짝 교호순번제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이만큼이라도 체면치레하게 해준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공천할당제를 비례대표 의석뿐만 아니라 지역구 의석도 의무화하되 특정 성별이 전체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라고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광역 및 기초 단체장 후보도 마찬가지로, 각 정당이 이를 실행하기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동안 각 정당은 지역구 여성 후보 30% 공천을 목표로 정해 놓고도 지금껏 실행하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여성후보는 19.9%에 불과하다. 당선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비율은 더 낮아질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여성 40%를 공천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결정할 국회는 남성이 절대다수다. 평균 수명의 증가는 남녀 수명의 차이로 인해 전체 인구에서 여성 비율을 점점 증가시키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정치영역에서 여성의 과소대표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은 호주제를 비롯한 민법상의 차별 조항 폐지, 남녀고용평등법, 모성보호법,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의 제·개정 등을 통해서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차별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국가 생존의 안위가 달린 저출산과 보육 문제, 기업의 가족 친화 경영, 여성에 대한 폭력 역시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할당제가 직면하는 비판 중의 하나는 정당이 매번 준비 없이 후보를 구한다는 것이다. 선거에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사람을 찾고 그래서 구해진 후보들은 그들 가까이 있는 사람, 그들과 동고동락해온 동지들이기 쉽다. 그러다 보니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당제 본연의 널리 구함과 전문적 식견은 이 과정에서 외면당하기 일쑤다. 당선 가능성이 큰 지역에 여성 인재들을 공천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당은 여전히 인색하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제어하기 위해서 법치 제도를 만들어 냈지만, 그 법 역시 인간이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또다시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를 믿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결정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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