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향기, 멀어지는 아까시 꽃향기
5월의 향기, 멀어지는 아까시 꽃향기
  •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회장
  • 승인 2022.05.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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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회장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회장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 ? 윽한 그 향기는 무언가요 아~ 아~ 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그 유명한 ‘여성만을 위한 껌’, ‘아카시아껌’ CM송이다. ‘여성은 향기로 말한다’, ‘향기 있는 여성이 아름답다.’ 등 이 아카시아껌은 다른 회사의 껌과는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기획하여 맛보다는 향기로 승부를 걸었다. 실제로도 이 ‘아카시아껌’은 다른 껌보다 향기가 더 진했고, 껌을 뻬고 난 포장지에서도 오랫동안 아카시아 향기가 흘러 나왔다. 1976년 당시 최고 여배우 정윤희가 혜성처럼 나타나 온통 블랙에 하얀 아카시아꽃잎이 수놓인 신선한 껌 포장지를 선보이며, 금방이라도 아카시아꽃 단꿀물이 흐를 것 같은, 단돈 천 원도 안 되는 껌 광고에 온 감성을 다 담았다. 그 광고는 대 히트였고, 그것은 곧 소비로 연결되어, 온 국민들이 몇 통씩의 아카시아껌을 씹고 또 씹게 했다. 그 아카시아꽃향기가 남아 있는 온 종일 몇 번이나 씹은 껌을 누런 윗방 벽에 붙여 놓고는 아쉽게 잠이 들곤 했었다.

5월이 가고 있다. 위봉 폭포를 지나, 동상면 수만리를 지나, 대아저수지 그 숲길을 달리다보면, 산자락마다 가지 채 출렁이는 아카시아꽃향기를 만난다. 금방이라도 그 새햐얀 꽃잎 속에서 단꿀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 그 짙은 아카시아꽃숲을 지나노라면, 아카시아꽃향기가 입 안 가득 물려 있던, 아카시아껌을 씹던, 그 시절이 되살아난다.

아카시아꽃향기가 온 산야를 물들이던 5월이 가고 있다. 뽀얀 꽃봉오리에 연두와 갈빛의 명품 스카프를 목에 두른 아카시아꽃향기가 천상의 웃음소리마냥 푸른 허공에 날리고 있다. 해마다 5월이 오고 중순을 넘어가면 그 큰 키를 흔들며 우수수 5월의 훈풍에 아카시아 하얀 꽃잎이 하늘 하늘 바람에 흔들린다. 그 아름다운 아카시아꽃향기가 산모퉁이, 논둑길, 밭둑길에 무리지어 서서 지나는 길손들에게 그 큰 손을 힘껏 흔들며 그 달달한 향기를 온 산야에 내뿜는다.

5월이 가고 있다. 5월의 꽃, 아카시아 어린 꽃잎들이 몽실몽실 토끼구름 등에 업은 푸른 하늘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고 있다. 아카시아꽃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 ‘죽음도 넘어선 사랑’, ‘모정(母情)’ 등이다. 옛날 호주 원주민들은 구혼 시 이 아카시아꽃을 선물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이 꽃을 바쳤을 때, 여인이 말없이 이 꽃을 받아들이면 프러포즈가 성사된 것으로 간주하여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본래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이 아카시아나무는 사실 전혀 다른 나무의 이름이다. 자생지도 열대지방의 더운나라이며 꽃도 황색이나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나무는 정확한 이름이 까시가 있어서 명명된 ‘아까시나무’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일제강점기에 땔감으로 산의 나무들이 대부분 벌목되어 황폐해진 산때문에 재해가 자주 일어나자 그 황무지에 식재할 나무를 찾던 중, 독일 총영사 크루거가 독일령 중국 청도에 식재한 아까시나무가 잘 자란다며 총독부 일본 관료에게 소개를 했고, 그 후 중국의 청도에서 수만 그루의 아까시나무를 들여와 전국에 식재했다. 최초로 식재한 곳은 경인선 부근이다. 아까시나무는 뿌리에 스스로 질소를 고정할 수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나무에 비해 생장이 빨라 목재의 경제적인 가치가 높다. 또한 강력한 햇빛을 필요로 하는 양수(陽樹)이며, 다른 자생종이 교목이 되어 그늘이 지면 아까시나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반대로 아까시나무도 큰 숲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다른 어린나무들이 자랄 수가 없다.

이 아까시나무는 일제에 의해 도입되어 식재되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농부들은 아까시나무 뿌리가 옆으로 뻗어나가 농작물을 망치고 해가 된다며 껍질을 벗겨 말려죽이거나 잘라낸다. 그러다보니 전 산림수나 조림수의 30프로를 차지하던 아까시나무는 이제 10프로 정도만 겨우 남아있다. 원유뿐만 아니라 설탕 한 스푼 생산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전체 꿀 생산의 70프로를 차지하는 아까시꿀의 밀원인 아까시나무는 하늘이 내린 신령한 나무이다.

질기고 단단하며 가벼워서 고급 목재로 사용되며, 황무지를 녹화할 수 있는 경제수이며, 단백질 함량이 높은 나뭇잎은 고급의 가축사료이며, 결이 곱고 탄력이 있어 고급의 공예재료이다. 또한 아름다운 꽃은 꽃잎 튀김, 꽃잎 차, 꽃잎 술, 꽃잎 효모로 활용되며, 관상수로도 적격이다. 또한 아까시꽃은 천연 항생제이며, 그 꿀은 항암제이며, 면역력 증가에 좋으며, 신경통을 완화시키고, 기력회복과 피부미용,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는 미래의 생명자원이다.

5월이 가고 있다. 하얀 아까시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이제 다시 또 5월이 오고 하얗게 아까시꽃이 산야에 만발하면, 일제의 흔적 등을 운운하며 함부로 베어내거나 홀대하지 말자. 이제는 좀 더 긍정적으로 이 땅에서 따뜻하게 품어보자. 이처럼 장점이 많은 미래의 생명자원인 아까시나무가, 저 아름다운 아까시꽃향기가 이 땅에서 영 사라지기 전에, 산림수, 조림수, 관상수, 귀한 먹거리로 유용하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그 가치를 재고해보자.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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