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끌림
흑백의 끌림
  •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 승인 2022.05.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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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경제 상황에 따라 소비패턴도 바뀌고 먹는 음식도 달라진다고들 한다. 왜 아니겠는가? 최근 들어 돈벌이가 어렵고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고가의 특정제품만 잘 팔리고 일반서민의 소비는 위축되는 편향성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지 않나 싶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누구라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추억의 음식 한가지 정도는 있을 것인데 길을 걷다가도 코끝을 자극하는 그 냄새만으로도 향수를 느끼며 군침을 삼키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맛으로 대중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라면 아마 짜장면이 아닐지 싶다.

요즘은 자장면으로 불리는데 왠지 자장면이라 하면 싱겁고 재료가 덜 들어간 느낌이라서 필자는 아직도 짜장면이라 불러야 제 맛이 날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들의 영원한 추억의 음식인 것만은 틀림이 없을 듯하다.

필자가 자랐던 시골마을 면소재지에는 중국집이 없었다. 행정구역상으로 면의 크기를 구분했지만 이웃마을 면소재지가 더 가까웠고 면소재지가 그리 크지 않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짜장면을 구경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우연한 기회에 처음 먹어본 짜장면은 천국의 음식처럼 환상적인 맛이었는데 아껴 먹다가 퉁퉁 불어버린 면발도 맛있고 양파 등 부재료들까지 남기지 않고 춘장에 버무려 깨끗하게 비웠던 기억이다.

필자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짜장면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못살던 시절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에 대한 추억이 많은데 자장면 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흑백의 끌림이 있다.

짜장면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단무지와 양파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뿌려주고 주방에서는 수타면을 내려치는 소리가 쿵쿵거리면 내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타고 궁궐 같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만드는 멋진 요리사가 되곤 했었다. 그럼에도 짜장면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은 진정되지 않고 기다림은 왜 그리 길게 느껴졌던지 어릴 적 중국집 풍경이 눈에 선하다.

짜장면 위에 가지런히 놓인 계란 후라이는 또 어린 필자를 갈등하기에 충분했다. 면이랑 같이 비벼 먹을 것이냐? 아니면 면을 다 먹은 다음에 후라이만 따로 먹을 것이냐? 어른이 되었어도 가끔 외곽도로의 수타면 집을 찾아 향수를 느껴보려는데, 재료나 음식의 풍성함은 좋아졌으나 그 옛날 맛과 사뭇 다른 것은 입맛이 변해서 그런가도 싶지만 추억의 맛을 기억하고픈 향수가 강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짜장면은 비비는 게 아니라 추억을 비빈다는 말들을 하는데 아마 그 옛날 마음의 추억을 끄집어내려는 그리움이 앞서서 그런 문구가 나왔다고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기계로 반죽하고 숙성의 시간과 재료의 배합비율이 같을지라도 기계에서 나온 면발과 둥근 밀가루 반죽으로 송판에다 탕탕거리며 뽑아낸 면발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일단 둥글고 가는 면발에 흥미가 떨어지는 반면 납작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흰색의 면발은 왠지 정감이 가고 무명실을 흩트려 놓은 모양으로 우리 앞에 흑백의 끌림인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중국집에서는 군만두와 물은 다른 명칭으로 ‘서비스’라는 말이 있는데, 어려운 경제 환경에 한 푼의 인건비라도 절약하려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풀리고 야외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야외나들이 다녀오다 출출할 때 요기로 짜장면 한 그릇 뚝딱 비우며 그동안 시름을 툴툴 털어내고 좋은 방향성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경기가 늘 어렵다고들 하지만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합쳐진다면 환한 웃음꽃이 필 날도 머지않았으며, 주머니 사정도 점점 나아져 소비패턴이 예전으로 돌아오길 희망해 본다.

수타면 뽑는 주인장의 땀방울과 면 내리치는 힘찬 소리에 침체 되어 있는 지역경제도 활성화되고 하얀 면 사리와 새까만 짜장 소스가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한바탕 신나게 어울려봤으면 싶다.

박종완 <계성 이지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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