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동학혁명은 왜 혁명으로 불릴까?
갑오동학혁명은 왜 혁명으로 불릴까?
  •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 승인 2022.05.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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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128주년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행사가 5월 11일 열렸습니다. 올해는 정읍 황토현 전적지에 새로 조성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개원식과 함께 국가기념일 행사가 열리게 되었으니 그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해 많은 성과가 있었다. 특히 국가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2004년 제정되었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도 2010년 새롭게 출범했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법과 기구, 국가기념일에 명시된 공식명칭이지만, 아쉽게도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학계에서는 아직도 동학농민혁명 이외에도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등 각기 다른 명칭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동학란, 동학혁명, 동학혁명운동, 농학농민혁명운동, 동학운동 등을 거쳐 1990년 이후 현재까지 ‘동학농민운동’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친일세력의 동학(東學)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과 편견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까닭도 있고, 광복 후 격동의 시기를 지내 온 국내 정치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최근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관련 몇 권의 책을 얼핏 읽고, 또 인터넷도 뒤져보며 여기서 얻은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 ‘왜 동학농민혁명을 혁명이라 부르는지?’에 대한 이유를 나름대로 모아 정리해보았다.

먼저 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채 비록 좌절되었지만 (1)백성이 스스로 나라의 주임임을 자각하여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든 우리 역사상 최대규모의 민중항쟁이며 (2)신분제도 폐지로 인간평등의 새 세상을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3)우리 역사 처음으로 민중에 의한 근대 개혁의 지방통치 모형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4)동학농민혁명은 이후 이어지는 일제 침략기 항일 의병항쟁, 3.1만세운동, 항일투쟁, 4.19혁명 등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주화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혁명이라 부르는 보다 내면적이고 근본적 이유를 동학(東學)이 체계적으로 제시한 새로운 인간관 그 자체에서 찾기도 한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인간관을 통해 평등과 자유, 민주 의식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을 단순한 봉기가 아닌 혁명으로 부르는 근본적 이유는 동학을 통해 생겨난 새로운 인간관이 일반 백성의 마음에 널리 자리잡게 했고, 고부농민봉기가 도화선이 되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역사의 정치, 사회 전반에 큰 변혁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아직 미완성으로 보여진다. 법률상으로나 정부의 공식 용어로서 ‘동학농민혁명’이라 불리지만, 아직도 우리 학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는 애매하게 동학농민운동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칭의 혼선 문제는 적극적이고 포용적인 논의의 장을 통해 정리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국가적 사안인 만큼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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