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정의와 ‘검수완박’
선택적 정의와 ‘검수완박’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5.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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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학창시절 ‘선도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필자는 딱히 담배를 피우거나 불량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던지라, 직접적으로 선도부의 선도를 받아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선도부를 보면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등교할 때 학생주임 선생님 옆에 일렬로 서 있는 선도부원들은 선생님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선도부의 구성원은 회장이나 반장과 같은 학급 임원도 있었으나 일부는 주먹 좀 쓰는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이 오히려 선도를 당해야 하는 학생들을 선도부에 넣은 이유는 뻔했다. 통제가 쉬웠기 때문이다.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생들은 선도부원의 편의를 봐주었고, 그에 보답하듯 선도부원은 교복 바지를 줄인 학생들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냈다.

일부 선도부원들은 화장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지각을 했다는 죄목으로 화장실 청소를 하는 학생들을 감독했다.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학생통제가 쉽다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일반 학생들이 일부 선도부원들에게 화가 났던 지점은 시쳇말로 표현하면 ‘내로남불’, 어려운 말로 하면 ‘선택적 정의’였다.

형사사건을 변호하다 보면 피고인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변호사님,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업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 이 정도는 한다고요.’ 1인회사를 운영하다가 횡령이나 배임으로 수사를 받는 의뢰인들은 더 억울해한다. 그래도 죄는 된다고, 다만 양형에 참작하여 달라고 읍소할 수는 있다고 말해주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불법의 평등’은 주장할 수 없다. 검사가 공범관계에 있는 피의자들 가운데 일부만 기소하거나 구속해도 마찬가지다. 잘못한 사람들 가운데 죄의 경중을 따져 처분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한 불법의 평등관계가 아닌, ‘선도부’의 경우처럼 선택적 정의가 발동된다면 어떨까. 누군가의 죄를 묻는 집단이 자신의 죄를 덮거나 특정 목적에 의해 ‘칼’을 휘두른다면? 모든 집단은 완전무결할 수 없다. 구성원들도 사람이다. 소수의 일부 성직자들이 성추행을 하거나, 일부 교수들이 연구비를 횡령하고 대학원생들을 착취해도 여론은 전부를 타박한다. 대다수 구성원들은 억울하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거래가 드러났을 때 국민들은 묵묵히 사법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대다수 판사들을 묶어서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판을 단지 일부의 문제로 뭉뚱그려 회피할 수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 국회 본의회를 통과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국무회의에서 공포했다. 검찰은 지난 4월 <한국리서치>의 국내 10개의 사정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19%로 최하위에 그쳤다. 반면 ‘검수완박법’에 대해서 편차는 있지만 반대한다는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10~20% 포인트 가량 높다. 검찰은 조직적으로 성명을 내고 수뇌부와 간부, 일선 평검사들까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항의를 했다. ‘검수완박법’은 문제가 많다. 필자를 포함한 변호사들도 대부분 그것을 지적한다. 여론도 그렇다.

그럼에도 법안은 통과된 이유가 무엇일까.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해도 먹히지 않는 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다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김학의 사건, 룸살롱 99만 원 향응 접대 불기소 사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 검찰권을 남용했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었다면 제아무리 다수당이었어도 마음대로 못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유세중에 잘못을 반성한다며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등 ‘쇼’라도 한다. ‘어공’과 ‘늘공’의 감수성 차이일까.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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