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남, 경육남
서오남, 경육남
  •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 승인 2022.04.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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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br>
전정희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새 정부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었다. “구조적 성차별은 끝났다.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고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라고 생각하는 당선인의 내각답게 국무총리를 포함한 장관 후보자 19명 중 16명이 남성이다. 인수위 구성에서도 27명 위원중 단 4명만이 여성이어서 서오남(서울대, 오십대, 남성)이라는 별칭을 얻었는데 내각은 경육남(경상도, 육십대, 남성)이 되었다.

인수위 구성이나 조각에 있어서 가장 앞에 내세웠던, 성별·지역·세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능력주의로만 하겠다는 공언의 결과다. 이준석 대표 역시 6·1 지방선거에서 여성, 청년, 장애인 등에 대한 당 차원의 할당제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최고위원 시절,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능력주의보다 나은 시스템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새 정부 내각이 철저히 능력주의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능력주의가 자원이 많은 기득권 계층을 유리하게 하여 자칫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폐해를 낳는다는 분석 또한 이미 나와 있다.

2015년 11월, 캐나다 총리가 된 40대의 쥐스탱 트뤼도는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역시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한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는 “여성과 남성이 각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에 여성도 절반의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2017년 27.7%(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에서도 한참이나 더 후퇴한 15.8%의 성적표를 2022년에 받아 들었다.

사기업도 이사회에 여성 비율이 높은 곳이 부정이 적고 무리한 투자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보고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은 여성 이사가 2명 미만인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유럽 연합의 국가들은 2027년까지 상장기업 이사회에 여성을 최소 3분의 1 포함시키도록 합의했다.

기업이나 내각이나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다양성이 결국 혁신과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경험적 연구들도 이미 나와 있다. 우리 속담에 “홀애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정에 대해 동병상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각의 다양한 구성이 각계각층 국민들의 여론을 읽어내고 여망에 부응해서 정책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으로써 혁신을 견인해내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차별의 교묘한 핑계는 능력이었다. “여자는 시킬 사람이 없어.” “여자가 잘해낼 수 있을까?” 왜 시킬 사람이 없나.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을 키워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은 이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구호가 아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는 대한민국에 여전히 차별로 눈물 흘리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리천장에 부딪혀 아파하는 여성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2008년 대선에 출마했고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한 뒤 “나는 1,800만개의 유리천장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고 했다. 1,800만개는 그녀가 경선에서 얻은 표다. 힐러리 같은 엘리트 여성도, 미국과 같은 성평등이 상대적으로 잘 구현되고 있다는 나라에서 유리천장이 온존함을 증거했다.

새 정부의 유리천장은 아마도 더 공고해질 듯하다. 여성가족부의 운명과 함께 한동안 젠더 이슈는 숨을 죽이게 될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걸어온 성평등의 역사가 거꾸로 되돌려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전정희<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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