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떨림을 공감하는 나의 울림
당신의 떨림을 공감하는 나의 울림
  • 이소애 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22.04.19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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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기차가 창밖 풍경을 뒤로 밀어낸다. 기차 바퀴에서 내 목소리가 뭉개져 철로에 깔린다. 깔린 소리는 진동이 정지된 침묵이다. 빛바랜 생각이 모여 기억을 되살리고 팽팽했던 꿈은 정거장 빈 의자에 누워 있다. 책갈피에 끼워둔 네 잎 클로버는 시간을 더듬어 젊음을 불러낸다. 채우기 위해 비운 넉넉함의 바람을 손끝으로 잡아 본다.

욕심을 내려놓은 자비를 체험하려고 발밑에 깔린 납작 엎드린 잡풀의 진동을 만지면서 그 작은 소리를 공감하기 위하여 귀를 연다. 버드나무 그림자를 스치며 흘러가는 물결을 손에 담아 조곤조곤 마음에 담긴 사연을 나누면 어떠리.

검은 구름을 가슴에 품을 때와 폭설이 밤새도록 덮칠 때의 아픔도 궁금했다. 내가 빈 소주병을 강물에 던졌을 때를 기억하는지, 그 상처가 지금도 척추를 건드려 허리를 굽히며 물결을 달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단 한 번도 어제의 나인 적이 없었다. 당신의 슬픈 떨림을 공감했을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서 전혀 울림이 없다. 점점 울림이 없어 내 주위에는 소음만이 존재한다. 새 우는 소리도 그렇고 창문을 두들기는 폭우의 발길질도 소리만 울릴 뿐이다.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을 때의 아우성이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내뱉는 기침 소리도, 한낱 담벼락에 던지는 돌멩이 소리이거니 생각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눈으로 보는 비참한 소리에 눈물을 흘렸던 감정이 내 몸에서 누군가가 훔쳐 간 것이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이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비통한 모습이 담긴 <피에타>를 생각한다. <피에타>는 그림으로 보아도 성모 마리아의 통곡이 들렸다. 극심한 고통으로 내가 빨려들어 갔다. 내가 곧 비통의 성모 마리아가 되었다. 그 아픔, 그 슬픔은 혼절했을 어머니의 고통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들을 무릎 위에 놓고 메마른 눈물을 흘리는 내가 되는 순간 나의 존재는 허공에 떠도는 먼지였다.

당신의 떨림을 공감할 때는 나의 울림이 있을 때 반응한다. 소리는 떨림이지만 귀의 고막이 떨려야 뼈를 흔들어서 달팽이관 안으로 떨림이 있을 때 들린다. 그러나 공간의 파동을 내가 인식해야 소리로 만든다. 요즈음 이상 변화가 발생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기침과 귀의 이명이 소리를 감지하지 못하도록 해서 힘들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창문을 덜컹거리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를 땅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뿌리를 뽑아버린다. 바람은 다른 사물이 바람의 세기를 세상 사람에게 알리라는 신호를 한다. 지붕이 날아가고 간판이 부서지는 세력의 강도를 타인이 공감하도록 바람 자락을 휘감는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몇 날 며칠을 걸어서 국경을 넘는 동안 그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그들의 시선은 초점을 잃은 허공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절망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롯가에 모여 앉은 사람들도 깊은 고뇌에 잠긴 듯 입을 다물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 그래도 총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전쟁의 아픔에서 참혹한 하루를 견디어 내는 그들의 외침을 공감하는 우주의 떨림이 총소리보다 더 크게 울렸으면 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젊은 함성이 봄꽃을 피웠다. 제주4·3사건과 세월호의 “가만히 있어라”의 푸른 바다와, 4.19혁명의 핏방울이 벚꽃을 피웠다. 경무대 앞 탱크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의 함성이 아름다운 4월을 핏방울로 물들였다. 울림이 심장으로 들어와 아픈 못을 박았다. 4월, 4월은 꽃이 보이고 피가 보이는 달이다. 국민의 떨림을 받아들이지 않은 비극이었다.

토스티(F. Paolo Tosti)작곡 <4월>을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 Pavarotti) 노래로 들어 보는 눈부신 봄날. 소리 떨림이 가슴 깊이 아름다운 울림으로 온몸을 감돌았다. 몇 편의 명화가 새처럼 눈으로 소리를 품는다. 르누아르 작 <봄>, 앙리 마리텡 작 <봄날의 연인들>, 에드바르 뭉크 작 <꽃밭에서> 등.

이소애<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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