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3월 봄 여행, 전주 자연 생태 동물원
아이와 함께하는 3월 봄 여행, 전주 자연 생태 동물원
  • 정영신 전 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2.03.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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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전 소설가협회 회장
정영신 전 소설가협회 회장

아직은 3월이다. 봄비가 날린다. 가랑가랑 가랑비가 흩날린다. 지인이 고향에 놀러 온단다. 비가 흩뿌리는데 오랜만에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에 고향 산천의 익숙한 바람을 좀 담아 힘을 얻고 싶단다. 다섯 살 꼬마 숙녀도 동행한단다. 내친김에 산야와 큰 바다에 널린 고향의 맛도 흠뻑 담아 가고 싶단다. 그래서 길을 떠났다.

먼저 꼬마 숙녀를 위해 몇십 년 만에 전주 동물원에 갔다. 키 큰 교목마다 통통 살이 오른 까치들이 열심히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허물어진 옛집을 새로 다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원뿔형의 큰물새장이 눈에 들어온다. 전주동물원은 1978년 개장을 한 뒤 2015년부터 자연 친화적인 최적화된 생태 동물원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이 큰물새장부터 원뿔형으로 가운데 꼭대기를 최대한 허공으로 높게 설계하여 새들의 날갯짓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공간설계를 하였다. 그러자 새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당연히 한정된 공간이지만 새들의 몸과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일까 이웃에 사는 까치 식구들이 떼로 몰려가서 물새장의 새들 밥을 수시로 훔쳐 먹어도 내쫓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맹금류사의 수리부엉이며 독수리도 줌 기능까지 갖춘 엄청난 시력과, 상공에서 50km 아래의 썩은 먹이 냄새까지도 맡을 수 있는 최고의 후각을 겸비했는데도, 웬일인지 깍깍거리며 제 먹이를 훔쳐먹는 까치 떼를 못 본체한다. 그런 조류들 간의 훈훈한 믿음 때문일까, 동물원 곳곳의 키 큰 나무마다 호화로운 까치집이 여기저기 들어앉아 있다. 그만큼 전주동물원 동물들의 인심이 후하다는 것이다.

전주동물원은 개표소를 지나자마자 잎넓은 대숲이 오른편에 펼쳐지고 길 양옆에는 이 동물원에 머물고 있는 대표동물들의 얼굴과 이름 휘장이 부는 바람에 펄럭이며 손님들에게 매번 인사를 한다. 그래서 일단 뭔가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그 대숲과 소나무, 철쭉들이 어우러진 잘 정돈된 초목 숲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동물들을 구경하게 된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한참을 돌다 보면 왠지 모르게 동물들을 만나는 동안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것은 시야에 들어오는 동물들 주변의 놀이 공간이 흙과 들풀과 잔디와 꽃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의 초목과 질 좋고 푸근한 황토흙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종일 지내는 동물들만큼이나 밖에서 구경하는 우리들도 관람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가 않고 편안한 것이다. 사실 아직도 청소 등 관리가 좀 편하다는 명분으로 많은 동물들이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피부병 등 여러 가지 감염성 질병때문에 고생을 하거나 사고사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전주동물원은 대나무숲과 소나무숲, 나무 의자, 나무 그네, 나무 쉼터 등 자연 친화적으로 각 동물들의 서식환경에 맞게 맞춤형으로 잘 조성을 해 놓아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도록 만들었다.

푹신한 천연마포길을 걸어 공작사에도 가보니, 청공작이 우리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 날개를 마치 합죽선처럼 접고는, 도도하게 이리저리 또각또각 걷고 있었는데, 아기 숙녀가 손을 내밀자 금세 눈을 맞추더니 그 진청색, 자청색의 목덜미를 한껏 앞으로 내밀면서, 그 화려한 청태극 무늬가 수 놓인 날개를 활짝 편 채 요염하게 걸어갔다가는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작은 꼬마 숙녀가 환호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아이는 곧바로 청공작의 화려한 날개 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또 덩치가 큰 에조불곰은 물속에 들어가 고기잡기 놀이를 하며 혼자 놀고 있었고, 반달곰은 낮잠을 자고, 야행성인 시베리아 쌍둥이 호랑이 천둥과 번개도 3시 정도까지는 낮잠을 자야 한다며 아직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정글의 왕자 숫사자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봄바람에 날리며 근엄하게 암사자 두 마리와 함께 나무 오두막에서 쉬고 있었다.

조랑말과 아프리카포니, 나귀, 얼룩말, 꽃사슴, 과나코 등 초식동물들은 울퉁불퉁 굴곡진 황토 언덕을 삼삼오오 모여 뛰어놀거나, 볏집이 따스한 막사에서 두 다리를 접고 앉아 흐흐엉 ,흐으엉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니 황토바닥이 더 푹신해졌다. 잔나비숲에서는 그림책으로나 본 것 같은 흰손긴팔원숭이, 토쿠원숭이, 일본원숭이, 알락꼬리여우원숭이가 이제 갓 태어난 아기원숭이를 배에 매단 채 긴 팔로 밧줄을 잡고 옮겨 다니거나, 바나나껍질을 발라먹으며 놀고 있었다. 마다가스카르섬 남쪽에 주로 서식한다는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세 마리는 마치 한 마리인 듯, 서로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는 찬바람을 서로 막아주며 이국의 겨울 날씨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또 일본 북해도 폭설 속에서도 잘 견딘다는 스노우몽키로 불리는 일본원숭이는 한국의 초봄 날씨 정도는 추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더 활발하게 그네도 타고 사다리를 오르내리거나, 이 나무 저 나무를 뛰어넘으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마치 땅에 내려앉은 원두막 같은 둥근 파충류사에는 커다란 안경카이만 악어가 반쯤 감긴 눈을 깜박거리며 나무 마루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쉬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지능이 높아 사육자도 알아본다는 열대우림 물가에 서식하는 순둥순둥 온순한 버마비단뱀이 3m도 넘을 것 같은 큰 몸을 돌돌 만 채 물속에 잠겨 있었다. 우리나라 뱀들은 주로 밭두렁이나 수풀 속에서 노는데, 이 열대우림의 큰 뱀은 이렇게 수시로 물속에 잠긴 채 지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 꼬마 숙녀가 너무 좋아했다. 아이도 흙과 들풀, 잔디며 수목이 우거진 전주동물원을 내내 즐겁게 관람했다. 그러고는 드림랜드로 옮겨가서 오리도 타고 목마도 타고, 우주비행차도 타고 대관람차도 다 탔다. 아이는 매표소 입구에서 공주풍선을 사서 하늘을 향해 날리며 내내 행복해했다. 아이가 벚꽃이 피면 또 오자고 한다. 우리 고장 전주 자연생태동물원은 성공한 거다. 꼬마 숙녀가 만족해하며 꽃이 많이 필 때 또 오자고 했으니 말이다. 전주동물원 관계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동물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전주자연생태동물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정영신 <전 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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