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디?
  • 임성진 전주대 교수/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
  • 승인 2022.03.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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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진 전주대 교수
임성진 전주대 교수

독일에서는 작년 9월에 치러진 총선을 통해 신호등 연정으로 불리는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간의 새로운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사민당(SPD)과 기민/기사련(CDU/CSU)의 득표율이 각각 25.7%와 24.1%를 기록함으로써 불과 1.6%의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박빙의 결과만큼이나 선거전 또한 치열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지 불과 한 달 후 이탈리아에서 열린 G20(주요 20국) 정상회담에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올라프 슐츠 사민당 대표를 동행시켜 각국 정상에게 소개한 일이 화제가 됐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차기 총리 후보로 새 당선자를 소개받았다. 수상이 바뀌어도 정부의 연속성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독일 선진 정치의 모습이다.

우리가 독일 정치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것만이 아니다. 다당제 정당구조인 독일이지만 이제껏 실질적으로 정치를 지배해온 정치세력은 사민당과 기민당 두 거대 정당이었다. 그런데 상반된 이데올로기로 대립해온 두 정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총 세 차례에 걸쳐 대연정에 합의하고 공동정부를 꾸린 바 있다. 그리고 이런 공동정부하에서 치른 가장 최근의 선거가 바로 지난 총선이다. 당시에 두 정당은 연립정부라는 한울타리 안에 동거 중이었으며 기민당의 메르켈 대표는 총리를, 사민당의 슐츠 대표는 재무부장관 직을 맡고 있었다. 결국 같은 내각의 총리와 장관이 선거전에서 각기 다른 경쟁 정당의 대표로 격돌한,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 다른 독일 정치의 모습도 한번 들여다보자. 내각제 권력구조를 가진 독일에서는 대부분 정책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철저한 의회 중심의 정치가 실현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정책을 놓고 의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참으로 격렬하고 장기간 지속된다. 여기에다 거의 매일 방송으로 정책 토론까지 이뤄지다 보니 마치 온 나라가 토론의 장이 된 듯하다. 그래서 독일정치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격하게 대립하는 정치 토론에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결코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힘의 대결이 아닌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밝히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된 논증의 현장이다. 그리고 정치적 합의는 이런 치열한 과정을 거치며 도출된다. 상대편의 의견엔 막무가내로 반대만을 일삼고 의사당에서 육두문자에 육탄전까지 벌이는 우리 정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지나오는 사이 한국의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경제적으로도 곧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서리란 전망이 나올 만큼 선진국 자리에 우뚝 섰고,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같은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서 정책은 관심 밖인 채 온갖 흑색선전과 인신공격만 난무하는 이번 대선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새로 당선된 차기 대통령은 갈라선 민심을 달래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정치변화에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처럼 극명한 대결 구도하에서는 새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는 들 모두 진영 논리에 빨려들어 사회적 합의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전환이 기존의 패러다임과 기술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강도 높고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어 국가의 역량결집이 더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변화는 소외되거나 피해를 보는 계층 없이 모든 행위자가 주체가 되는 ‘정의로운 전환’을 전제로 하기에 모든 정파나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소통과 국민통합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은 당장 인수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독일의 사례처럼 정부의 연속성이 끊김 없이 유지될 때 비로소 성공한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

임성진<전주대 교수/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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