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리더
우리시대의 리더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2.03.06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상 두 번째로 총리가 독일에서 명예롭게 평화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라고 믿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안심하고 주무십시오.”

네빌 체임벌린은 세계 대공황으로 위기에 처한 영국의 구세주였다. 그는 대공황시기 영국의 재무장관으로 6년여간 일하면서 경제개혁을 통해 영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유력정치가인 아버지 밑에서 성공한 기업인 출신으로 승승장구하던 체임벌린은 세계 2차대전의 위기가 고조되던 1937년 영국총리로 취임하였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잘 나가던 대영제국의 촉망받는 총리였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히틀러에 대한 오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공격적 팽창정책에 유화적인 외교로 ‘뮌헨 협정’을 이끌어 냈지만, 히틀러는 6개월만에 협정을 파기하고 이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다. 체임벌린은 ‘뮌헨 협정’후 총리 관저 앞에서 ‘우리시대의 평화’라 불리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은 외교적 정책 오판의 대표적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체임벌린의 판단은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당시 영국의 입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의 충격으로 경제가 어려웠고, 스탈린의 공산주의 팽창정책을 히틀러의 나치독일로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보다 평화적 외교로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을 것이다. 다만,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전쟁 야욕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뮌헨 협정’으로 영국인들에게 실패한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후임 총리로 그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 임명되었고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순서가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처칠이 세계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재무장관 출신의 체임벌린과 군사통인 처칠은 시대에 맞는 자신의 역할이 있었을 뿐, 어느 누가 모든 시대에 유능한 리더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코미디언 출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해서다. 외교적 판단미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부정적 평가부터 그래도 전쟁 발발 이후 끝까지 수도에 남아 결사항전을 택하여 리더로서 우크라이나의 단합을 이끌어 냈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어떤 평가가 옳은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위기 상황이냐에 따라 그에 맞는 리더를 선출하는 일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다. 3월 9일에는 대한민국의 리더를 뽑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6월에는 지방선거도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침체된 경제와 끊임없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가 더해져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전북도 마찬가지다. 지역경제는 침체되고 전북을 위한 국책사업들은 지지부진하다. 주요 도심을 가보아도 젊은이들을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과 전라북도는 체임벌린이 아닌 처칠이 필요하다. 눈 밝은 도민들이 누가 처칠인지 가려야 한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