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과 어머니의 호위무사
설 명절과 어머니의 호위무사
  • 윤준병 국회의원
  • 승인 2022.02.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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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병 의원
윤준병 의원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께선 재작년부터 요양병원에 계신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심해지기 전에는 가족들과 요양병원을 찾아 어머님의 건강을 살폈고 함께 시간도 보냈다.

그러나 2020년 3월부터 요양병원에 대한 면회가 전면 금지되면서 어머니를 뵙기 어려워졌다. 계속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면회를 못하게 되니 혹여라도 어머니께서 ‘자식들이 어머니를 병원에 버린 것으로 생각하시면 어쩌나’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겁다.

이번 설날에도 역시나 면회가 금지됐다. 지난 추억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받을 수밖에 없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처음 화상 통화를 하게 됐을 때가 생각난다. 어머니께선 늘 하시던 대로 “둘째 아들, 몸조심하고 애들 잘 챙기거라”고 말씀하셨다. 병환 중에도 오직 자식만을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어머니께서 울지 말라고 말씀 하셨지만, 송구스런 마음에 속절없이 눈물만 흘렀다.

필자의 어머니께선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유학자 할아버지께 교육을 받으시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오셨다. 그 시절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머니는 캄캄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농사일, 집안일로 몸을 쉬시는 법이 없었다. 더구나 비슷한 나이대의 삼촌, 고모들까지 부양을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꼿꼿하고 엄정하신 말과 자세는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고 우리 형제들도 엄히 가르치셨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게 가족과 자식에게 평생 헌신하신 어머니의 고생내력을 잘 아는 가족마저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험담이나 불손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유교전통에서 자란 어머니는 아무 내색없이 그저 순종하셨다.

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곤 했다. 어머니에게 잘못하는 가족을 미워하고 나이가 많은 삼촌, 고모, 형에게도 때론 대들곤 했다. 그러면 안된다고 어머니에게서 꾸중을 들어가면서도 어머니에게 대드는 가족을 용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하늘 같은 분이다. 낳아주셨고, 길러주셨고, 언제나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을 보호하는 것은 자식의 당연하고 마땅한 도리다. 그 하늘 같은 어머니께 누군가 해를 끼친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과연 참을 수 있을까?

코로나 3년차인 지금, 우리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고 명절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줄었고, 명절 풍속도 또한 ‘비대면, 언택트’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비대면 문화로 인해 찾아오는 자녀들이 줄어들면서 어르신들이 얼마나 적적하실까 하는 마음에 이번 설 연휴 전후로 지역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을 직접 뵙고 인사드렸다. 경로당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이 나의 어머니 같았다. 건의사항도 있었지만, 나라 걱정에 쓴소리 또한 많이 해주셨다.

경로당에서 뵈었던 한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땐 참 어려웠어. 전쟁 나고 아무것도 없이 5남매나 되는 애들을 키우느라 한시도 손에서 일거리를 놓아본 적이 없어.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다 보니 자식들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어도 형편이 여의치 않았지. 그러다 보니 형제들이 있어도 교육을 똑같이 하지도 못했거든. 그게 형제들간에 갈등을 낳기도 했고 말여.” 이렇게 시작된 어머님의 이야기는 이재명 후보 형제간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오죽했으면 그랬겄어. 다 우리가 가난한 시대를 산 것이 죄여. 그렇다고혀서 부모한테 욕하는 형제를 윤 의원 같으면 참겄는가?”

형제에 대한 욕설을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이겠으나, 애초에 애쓴다고 넘을 수 있는 벽도 아닌 가난의 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만들어낸 역사적 상처이지 않을까? 욕설 자체를 잘한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나라면 그 상황에서 그저 온화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부모에게 욕하는 형제를 윤의원 같으면 참겄는가?”라는 어느 경로당 어머님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윤준병<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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