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다고 지름길로 갈 건가
급하다고 지름길로 갈 건가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블로거
  • 승인 2021.12.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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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사브리나 코헨-해턴의 《소방관의 선택》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코헨-해턴은 약 20여 년 경력의 현직 소방관인데, 이 책을 통하여 ‘위험을 고려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설파합니다. 이 책에서는 수도꼭지의 물조차 순식간에 끓는 증기로 변하여 화상을 입힐 수 있는 화재 현장의 긴박함 속에서도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정해진 원칙이나 메뉴얼’을 찾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입니다. 제임스라는 소방관이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팀원들에게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화재 진압을 지시합니다. 물론 팀원들의 건의나 사정은 번번이 무시해 버립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팀원들은 강압적인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를 뿐, 매번 중요한 보고들이 늦어졌고, 화재 원인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허둥댈 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임스가 팀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에 대한 시간이 촉박하거나 어떤 압박에 짓눌릴수록 사람들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해 버립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함께하는 동료’를 망각하게 합니다.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말하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큰소리치고 남을 무시하게 되지요.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갑질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생깁니다. 그들에게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처럼 답답한 말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나오는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일을 형편을 정확하게 보라는 의미’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곧이듣지 않고 이렇게 변용해 쓰기도 합니다.

“급할수록 지름길로 가라”

만약 우리가 ‘급할수록 지름길로 가는’ 말을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의 관계에서 ‘지름길로 가는 말’은 파국으로 치닫는 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최근 대선정국과 휘말리면서 우리 사회에는 막말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을 넘는 반박이 돌아오고, 마침내는 법적 고소까지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선거판에서만 생기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일어나기도 합니다.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출근하는데, 누가 전화를 걸어 밑도 끝도 없이 불만을 늘어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만나서 차근차근 이야기하지 않고 꼭두새벽부터 전화했다고 화를 내겠습니까? 아니면 참고 들어줄 것입니까? 다다다닥 반격하거나 힐난하면서 언쟁을 했다면 그들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뒤틀릴 것입니다. 다행히 끝까지 인내하면서 들은 다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면서 속상한 그의 마음을 지지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자기 생각과 다르면 금방 외면하고 거절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안 보면 그만이라는 듯 자기 이야기만 할 뿐, 상대의 처지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말하기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을 망각한 일입니다. ‘말의 가시’에 걸려서 더 상처 입게 될 사람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는데, 그 하찮은 자기 기분에 취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다그치거나 늘어지는 말은 곤혹스럽게 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방의 가슴에 ’가시 하나 꽂는 화법’을 쓴다면 그것은 너무 잔혹한 일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 걸려 상대방이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하라.”

《리더의 말 그릇》의 작가 김유나 선생은 이렇게 제안합니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을 따라 조금만 따라가 보기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책까지 발견하는 상대의 말을 듣게 됩니다. 리더가 또는 청자가 화자의 감정과 의도를 무시하지 않는 것은 그의 미안함과 두려움, 때로는 숨기고 싶은 속마음까지도 지켜주는 숭고한 일이기도 합니다. 감정과 의도를 무시하지 않는 대화법,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상대방을 일으켜 세우는 행복한 대화법이 아닐까요?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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