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로부터 영원한 해방은 없는 것인가
문제로부터 영원한 해방은 없는 것인가
  •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 승인 2021.11.25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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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대의 철학서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우화.

두 마리의 새가 한 나무에 앉아 있다. 똑같은 깃에 똑같이 생겼지만, 한 마리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새이고 다른 한 마리는 불멸의 새이다. 죽을 운명의 새는 나무의 아래쪽 가지에 앉고 불멸의 새는 맨 위쪽 가지에 앉아 있다.

이 가지 저 가지 움직이는 새는 나의 마음이고, 위쪽 가지에 고요히 앉아 있는 새는 나의 참나이다. 열매를 탐닉하는 새는 에고이며, 그것을 초연히 바라보는 새는 참나이다. 그들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내 육체이다.

세상 차원의 새는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고통의 열매를 맛보는 순간 그 기대가 헛된 것임을 깨닫고 위쪽 가지에 앉은 새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아래쪽 새가 위쪽 가지의 새를 알아보는 순간,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된다.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자아는 서서히 가까워져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 무한한 자아가 곧 자신이었음을 깨달아 완전한 평화에 이른다고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내 안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다. 그 나와 가까워져야 한다.

삶의 문제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가 한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다른 문제가 일어나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곤 한다. 낙타 한 마리가 앉아 있을 때 다른 낙타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 이러한 순환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결코 우리 인생에서 모든 낙타가 앉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문제로부터 영원한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잠들지 못해서는 안 된다.

삶은 사막을 건너는 여행이다. 낙타를 자신에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도 낙타에게 묶인 것이다. 문제들에 맞닥뜨리면서도 깊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타들이 앉아 있든 서 있든 방해받지 않고, 기나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유목민들처럼. 여행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앞에 놓인 길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이다.

“바보 같은 녀석아! 내가 밧줄에 묶여 있는 것이 안 보이느냐? 스스로 묶여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풀어 줄 수 있단 말이냐?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느냐?”

“나는 이해가 되네. 세상일과 욕망에 묶여 있는 자는 다른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줄 수 없다는 것을. 사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박을 깨뜨려 줄 수 없겠지. 자신의 힘으로 욕망과 환상을 떨쳐내고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계속 묶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세상에는 마음의 세계에 대해, 삶과 진리에 대해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모든 병에 정통한 의사처럼 해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공식처럼 들려주는 설명은 때로는 독과 같다. 이해가 아니라 관념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따르라고 현자들은 권한다.

시간을 단축시켜 주려고 미리 해답을 제공하는 것은 삶을 빼앗는 일이라 한다. 새는 알에서 나올 때 두 다리로 힘껏 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때 사람이 껍질을 깨 주면 다리 힘이 부족해져서 잘 날지 못하고 도태된다고 한다.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다리의 힘이 약해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일은 결국 스스로 힘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서정환<신아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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