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블로그 운영자
  • 승인 2021.11.24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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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는 흑인 인권 운동을 비롯하여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비폭력 저항과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과 흑인들의 영웅이다. 당시 남아공의 백인 정부는 1961년부터 27년간 그를 감옥에 가두고 고문과 협박을 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남아공의 미래와 내일을 이야기했고, 마침내 1994년에는 남아공의 직선(直選) 첫 번째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화해와 평화 그리고 단합을 요구하면서 ‘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퇴임 후에도 에이즈 퇴치와 어린이 교육,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에 앞장섰다. 이에 남아공 국민은 그를 ‘마디바(Madiba, 어른)’, ‘타타(Tata, 아버지)’, ‘쿨루(Khulu, 위대하다, 훌륭하다)’ 등으로 부르며 따랐다. 2007년의 어느 날, 《뉴욕타임스》의 편집장 빌 켈러가 그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난 27년간 당신을 감옥에 가두고 온갖 혐오와 비방을 쏟아냈던 자들을 왜 증오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하여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전략을 실행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만델라의 관용과 화해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와 같은 분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는 박정희의 오랜 정적(政敵)으로 온갖 박해와 수모를 당했고, 하마터면 대한해협의 검푸른 바다에 수장될 뻔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그는 1998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잦은 투옥과 고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살았지만,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자들에 대해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로 총체적 부도 위기에 빠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의 분노에 집착하였다면 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대선정국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거대한 ‘보복 프레임’이 내재해 있는 것 같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40%의 내외의 높은 국민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정권교체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대통령의 마음도 복잡해질 것 같다. 자신이 발탁한 검찰총장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게다가 날 선 공방까지 계속되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매우 복잡할 것이다. 정치판에는 과거 청산 같은 공방이 있을 뿐,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 같은 것은 없다. 이승만처럼 독재 정치를 하지 않았고, 박정희처럼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전두환처럼 시민을 총칼로 위협하지도 않았고, 이명박이나 박근혜처럼 부패하거나 국정 농단도 하지 않았지만,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은 사뭇 거칠기만 하다.

게다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대립 양상도 불안하다. 각 당이 후보 경선을 치열하게 치렀지만, 여당도 야당도 패자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흔쾌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선출된 후보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불안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은 가까스로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야당은 만남은커녕 통화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은 자신을 탓하기에 앞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로 2년 가까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정치란, 이런 암담한 현실을 타개함으로써 국민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는 것일 거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향해 극단적으로 미워하면서 증오를 양산하고 있다. 그럴듯하게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정치권에 판을 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막말과 편 가르기를 일삼으면서 끊임없이 증오를 확산하고 있다. 누구 말처럼 ‘파리떼’가 되어 가고 있다. 이는 매우 불길한 징조다. 오로지 ‘보복’에 눈먼 욕망이 끝없이 표출된 느낌이다. 국가와 민족의 내일을 염려하지 않은 정치는 위험하다. 대립과 증오는 보복을 불러올 뿐이다. 정치가 보복에 눈멀어 국민의 소중한 꿈을 외면할까 걱정이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블로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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