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나팔꽃
  • 박성욱 수남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21.11.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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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속을 달리다

 올해 3월 1일 자로 장수 수남초로 발령이 났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약 60km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 2월 말에 교감 발령통지를 받고 학교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함께 인사하러 몇 분과 함께 갔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 보니 먼 길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런데 3월 2일 출근부터는 혼자였다. 아직 차가운 아침 기운이 가득했고 첫 시작은 낯설고 설랬다. 늦지 않으려고 빠른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소양을 막 지나서 터널 한 개를 통과했다. 진안을 막 들어서서 또 터널 한 개……. 마지막으로 장수읍에 막 들어설 때 통과하는 싸리재 터널을 끝으로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지만 10개 남짓 되는 것 같다.

 첫날에는 졸리지 않았는데 며칠 지나서 졸음이 쏟아진다. 위험하다 싶으면 쉼터에서 잠깐 쉬었다가 간다. 요즘에는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보다는 꼬불꼬불 지방도로를 타고 통학하고 있다.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보다는 천천히 달리는 지방도로가 재미있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도 내가 변화하는 것도 느낄 만큼의 속도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터널 속을 지날 때마다 “와~~~.” 하고 소리를 냈던 기억이 난다. 주로 높은 산에 터널이 뚫리는데 기압 차로 귀가 먹먹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다. 터널은 빠져나오면 왠지 다른 세상에서 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팔꽃과 터널

 나팔꽃 꽃잎 주름을 따라 가운데 암술, 수술, 꽃밥 있는 곳까지 시선을 따라가 보면 나팔꽃이 터널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어둡다. 어두움은 눈을 감고 생각하게 만든다.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떠올리게도 한다. 다른 세계로 초대받기 위해 잠시 들렀다 지나가야 하는 문이기도 하다. 까만 어둠 속에서도 밝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나팔꽃

  김가영

 

 나팔꽃을 보면

 터널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 속에서 기억들을 본다

 

 슬픈기억, 기쁜기억, …….

 

 그 끝은 내 마음으로 향한다

 

 까맣게 맺혀진 내 마음 속 상처를

 이른아침 이슬로 말갛게 씻어내고

 

 다시 피워낼 내 아름다운 날들을 축복한다

 

 

 박성욱 수남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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