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武運)과 무운(無運)’에서 보는 교육
‘무운(武運)과 무운(無運)’에서 보는 교육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블로그 운영자
  • 승인 2021.11.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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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 국민의당 안철수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출마 선언은 2012년도와 2017년도 이어 세 번째이다. 그가 끝까지 완주할지 아니면 중도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포기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안철수는 이미 한 번의 양보와 또 한 번의 완주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안철수의 대통령 출마 선언에 ‘무운을 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무운’의 의미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진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지극히 의례적인 발화로 대통령 후보로서의 선전(善戰)을 빌었지만, 많은 사람이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라 크게 당황했다는 것이다.

’무운(武運)‘ 이란 글자 그대로 ’무인(武人)으로서의 운’이라는 의미다. ‘무인(武人)’은 ’전쟁터에 나가 싸움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니 ’무운을 빈다‘는 의미는 ’전쟁터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대통령 선거라는 치열한 싸움판에 나선 만큼 잘 싸워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이다. 그런데, 한 방송 기자는 안철수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불편한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무운(無運)’을 떠올리면서 ’운이 없기를 빈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방송 기자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젊은이가 이 ’무운(武運)’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무운’이라는 낱말의 인터넷 검색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세계일보 박창억 논설위원이 그의 칼럼 「무운(武運)과 무운(無運)」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우리 국민의 국어 수준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몇 해 전 서울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교양 국어 시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자어 기초실력을 평가했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교양, 논문, 통일’ 등의 단어를 한자로 쓰지 못했다. 또 일부 학생은 ’학과(學科)‘의 독음을 ’학교’라고 썼고, ’문화(文化)‘의 ’화’를 ‘꽃 화(花)’로 쓰기도 했다. ‘각고(刻苦)’를 ‘해고’나 ‘수고’로 옮기기도 하고, ‘배수진(背水陣)’을 ‘북수진’ 또는 ‘북수차’로 읽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언중들 가운데 한자 문맹인(文盲人)이 늘어나면서 보여준 풍경의 하나다.

이번 ‘무운’ 의 웃음거리가 일어난 데에는 우리의 일관성 없는 문자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국어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인 현실에서 ‘한자(문) 교육’에 보인 정부의 무성의와 일관성 없는 문자정책 탓이라는 것이다. 1970년도에 단행된 한글전용 이후, 여러 번의 한자병용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한문(漢文)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한문(漢文) 경시 풍조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비롯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부터 이미 한자 교육은 길을 잃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적용한 ‘제7차 교육과정’에서도 한문(漢文)은 필수과목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율(文解率: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비율)이 겨우 2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우울하게 한다.

국어사전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 사실은 우리가 안고 있는 언어적 숙명이다. 이 숙명 같은 짐은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일상 어휘의 대부분이 한자어이고, 또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유산도 대부분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을 바르게 쓰고,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 학습은 필수적이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가독성(可讀性)이 높은 장점이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저절로 의미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처음 배우고 익히기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쉽게 익힐 수 있다. 최근 ‘무운(武運)’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의 한문(자) 교육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았으면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블로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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